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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기보다 즐기는 축구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기다려진다. 6월이 빨리 왔으면, 아니 천천히 왔으면.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책이 끝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았으면 좋겠다. 나는 축구광이다. 헤어진 애인을 닮은 호나우두와 프랑스가 우승하는 순간 귀빈석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하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아이처럼 순진한 미소가 아직 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일국의 최고지도자답지 않은 천진한 미소를 떠올리며 환상을 품어본다. 모든 나라의 모든 권력들이 축구에 열광한다면 이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질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도 폭탄 대신 공차기로 우열을 가렸으면.

얼마 전 나처럼 1998년 월드컵을 한 게임도 놓치지 않고 다 본 사람과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토로하며 꽤나 아는 척했지만, 축구에 대한 나의 지식은 오프사이드를 겨우 이해한 수준이다. 대학 재학 중에 인문대 체육대회에서 골키퍼를 맡은 게 유일한 실전경험이고, 다섯살 된 조카와 가끔 아파트 거실에서 공을 차는 걸로 만족한다. 수박공을 굴리며 깔깔거리는 아이를 보는 낙에 동생 집을 찾듯이, 나는 경기보다는 잔디밭을 질주하는 젊음의 활기와 화려한 골 세리머니(goal ceremony)를 좇는다. 나라마다 축구선수들은 어쩜 그리 멋있는지. 월드컵은 내게 미스터 유니버스대회를 훔쳐보는 은밀한 기쁨도 덤으로 선사한다. 사사로운 욕망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도취라고 우기고 싶다.

공을 갖고 노는 톡톡 튀는 개성은 살아있는 예술인데, 한국축구에는 기술을 뛰어넘는 예술이 없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경기장 안에서는 날 감동시키지 않는다. 바로 그게 한국축구의 가장 큰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감동이 없고 승부만 있다. 무조건 이기려고만 하지 즐기지 못한다. 승부에 집착해 공이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갈 공도 골대에 맞고 다시 튕겨나온다. 그런 뻣뻣함이 선수들 개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민들이 우리 선수들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방송과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하다못해 지하철 광고에서도 한결같이 16강을 외치며 선수들의 등을 떠민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무시무시한 획일성과 감상적인 애국주의, 콤플렉스가 뒤섞인 한심한 작태다. 그래서 불쌍한 우리 선수들은 무늬만 신세대이지 머리만 노랗게 물들였지, 남미나 유럽의 선수들처럼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자유롭게 운동장에 풀어놓지 못한다.

최근의 과열된 부동산투기로 정작 실수요자들이 집 구하기 힘들 듯이, 뜨겁게 달아오른 16강 열기 속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찾기 어렵다. 오프사이드보다 고급스런 경기규칙들을 알고 싶지만 어느 방송에서도 나의 허기를 채워주지 않는다. 밤늦게 텔레비전을 보다 문득 한탄한다. 한 나라의 총력을 기울인 축제가 진짜 축제일까. 준비가 안 됐는데 욕심을 부린 건 아닌가. 잘못하면….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니 팍팍 밀어줘야지. 나도 축구에 관해선 이성을 잃는다. 아무렴. 수술 뒤 한달쯤 왼손을 못 쓴다는 의사의 말에 손목인대 수술을 6월로 미룬 내가 아닌가. 축구를 보며 고통을 잊으려고.

그동안 우리 축구는 한(恨)의 축구였다.나라를 뺏기고 못 먹고 괄시받은 온갖 설움을 '슛! 골인'으로 풀려는 답답한 속내를 내가 왜 모르랴. 하지만 이제는 국력을 체력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집단초조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날이 곧 우리나라가 살고 싶은 나라가 되는 날일텐데. 큰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외국선수들은 팡팡 웃는데 우리 청년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하다. 나는 차두리와 이동국의 눈에서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맺히는 걸 보고 싶다. 그래서 내 지리멸렬한 일상에 잠시 숨통이 트이고 인생이 환희로 차오르는 순간을 만끽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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