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오해 녹인 '드라마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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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월초 한 일본인이 e-메일을 보내왔다. 가수 유승준의 열렬한 팬이라는 이 청년은 "유승준을 비난하는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한국 군대에선 자살하는 병사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던데 왜 못 보내서 안달이냐"라는 말로 한국 군대에 대한 강한 무지(無知)섞인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보름 뒤에 그에게서 다시 e-메일이 왔다. "한국 군대를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는 뜻밖의 내용이었다.
사정은 이러했다.일본에선 지난 4·5일 최초의 한·일 합작 드라마 '프렌즈'가 방영됐다. MBC와 일본의 TBS가 함께 만든 '프렌즈'는 우연히 만나 사랑을 이루는 한국 남자(원빈)와 일본 여자(후카다 교코)의 이야기다. 한국 남자는 영장이 나와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고 일본 여자는 그를 면회하러 한국에 와 사랑을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방영 직후 TBS 홈페이지에는 "안동의 고택(古宅)이 운치 있었다""한국인들은 정이 많은 것 같다"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일본인들이 이 드라마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한국 군대다. 한국 군대를 '감옥'이나 다름없이 여기던 일본 젊은이에게 한국 남자가 해병대에 자원해 충실히 군생활을 하는 모습이 신선해 보였던 것이다. e-메일을 보낸 청년 또한 드라마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프렌즈' 한국 시사회에 참석한 일본측 감독 이사노 히데키는 "일본인들의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군대장면을 드라마에 꼭 넣어야 할지 고민했다"며 "결과적으로 한국을 새롭게 보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프렌즈'는 한국인이 보기엔 다소 유치하다. 특히 군에 다녀온 동생·아버지·친구의 과장된 고생담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무슨 계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한국을 긍정적으로 알리는 일등공신이 됐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일본인에게 한국을 왜 모르냐고 항변해 봤자 소용없다. 잘된 드라마 한 편 보여주는 게 차라리 낫다. 이참에 한·일 합작 드라마가 좀더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프렌즈'는 15·16일 한국에서도 방영된다. 우리 한국인도 드라마를 통해 일본 사회를 조금씩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한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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