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신여소야대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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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색깔이 같지는 않아도 비슷하면 연대할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당색의 정당들이 연대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유럽 등지에서 흔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녹색(민주당)·노란색(국민참여당)·주황색(민노당)으로 이뤄진 ‘색의 연대’가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지방 선거 후 야권은 지방공동정부 인수위의 구성에 착수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우려도 있다. 시장·도지사의 당색이 지자체장·지방의회의 당색과 다른 상황이 연출됐다. 따라서 ‘세종시 신안(新案)’ ‘4대 강 사업’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 ‘GTX 건설’ ‘위기가정 무한돌봄’ ‘강변 살자 프로젝트’ 등 여권에서 주도하는 사업의 추진이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신여소야대(新與小野大)’ ‘사면야가(四面野歌)’를 유권자와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선 민주적 정당정치에서 행정단위의 우두머리와 의회, 하부 행정단위의 장의 당색이 다른 게 세계적으로 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프랑스·미국의 경우 좌·우, 보수·진보의 동거 현상이 20세기 후반부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1986년부터 세 차례 ‘좌우동거정부(cohabitation)’가 구성됐다. 프랑스 유권자들에게 좌우동거는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소위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즉 대통령과 의회의 다수파 정당의 당색이 다른 선거 결과도 80년대 이후 12차례 발생했다. 우리도 어쩌면 좌·우, 보수·진보의 동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색깔이 다른 정당이 각기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하는 현상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행정부와 의회 다수당이 같은 당색이면 아무래도 장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새로운 법안·조약을 통과시키거나 내각·사법부를 구성하기가 더 쉽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평가한 순위를 보면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순위가 높은 대통령은 상·하원을 장악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미국의 경우 ‘분점정부’가 오히려 더 생산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설득력을 얻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분점정부 기간의 경제성장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이는 ‘교통방해효과(gridlock effect)’로 설명된다. 당색이 다른 의회가 정부를 견제하면 예산을 더 알뜰하게 쓰게 된다는 것이다. 행정부와 의회를 같은 당이 장악해야 좋다는 ‘신화’를 깬 인물로는 예일대 석좌교수인 데이비드 메이휴 교수가 대표적이다. 미국 정당정치 연구의 최고봉으로 인정되는 메이휴 교수는 『분점정부론(Divided We Govern)』(2005년)에서 분점정부도 중요한 헌정사적 업적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논증했다.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분점정부에 대한 논의는 정치·행정 지형이 바뀐 우리나라에도 응용할 수 있다. 신여소야대는 잘만 운영되면 미국의 경우처럼 여야가 서로 견제하는 가운데 알뜰하고 효율적인 지방 정부 운영을 이룩할 수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에는 ‘명칭은 다르나 따져 보면 한가지’라는 뜻이 있다. 당명·당색이 달라도 ‘그 당이 그 당’이라는 평가에 쓸 법한 표현이다. 인간의 뇌가 분간할 수 있는 색깔의 종류는 1000만 개라고 한다. 유권자는 당색을 구별할 능력이 충분히 있다. 대대적인 정치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 각 당이 차별성을 보여주면 유권자는 이를 알아 줄 것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