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 Report] 일본 새 내각, ‘관에서 민으로’ 고이즈미식 개혁 배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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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간 나오토 새 일본 총리

리더십이 돋보이는 총리로 바꾼다고, 탈(脫)오자와의 ‘깨끗한 정치’를 외친다고, 과연 일본이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고 정부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큰 정부’ 노선을 견지하는 당내 파벌과 연립내각 파트너 때문이다.

◆결국은 불황이 문제다=하토야마 내각서부터 따져보자. 하토야마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자주 지적되는 것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등 주요 공약에 관해 오락가락했던 리더십, 지켜질 수 없는 포퓰리스트 공약의 번복, 파벌에 휘둘리는 부패한 구태 정치 관행 등이 지적되고 있다. 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만일 하토야마 내각 아래 일본 경제가 일어서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과연 일본 국민이 총리를 내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하토야먀 내각 몰락의 밑바닥에 ‘잃어버린 20년’ 경제와 해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늘어나는 국가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반(反)오자와만으로는 어려워=그렇다면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민주당 연립내각이 재정을 바로잡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올해 예산을 보라. 재정적자(또는 국채 발행액)가 조세 수입보다 많은 기형적인 나라살림을 했다며 앞선 자민당 내각의 무책임을 비판한 민주당 내각이었지만, 적자 확대와 부채 누증의 재정운용 행태는 변함 없이 이어가고 있다. 정부 지출을 줄였다고는 하나 2010년 예산은 전후 둘째로 큰 규모(92조3000억 엔)이고, 세수(37조4000억 엔)가 국채 발행(44조3000억 엔)에 훨씬 못 미치기는 자민당 정권과 마찬가지다. 올 예산 통과 시 재무상은 간 총리였다.


그렇다고 지금의 민주당에 일본 재생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각과 민주당을 간 총리의 리더십 아래 두는 데에 합심할 것이 예상되는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상,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민주당 간사장 등은 모두 관료주의와 공공 건설사업 중심의 경기부양 등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간 총리는 그 출신과 성향으로 보거나, 재정 건전화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는 재무상 경험으로 보거나, 행정개혁과 재정지출 억제를 추진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간 총리가 원한다고 ‘작은 정부’ 개혁을 통한 재정 건전화와 경제 활성화가 가능할까다. 그에게 성공적 개혁 추진에 필수인 3요소(불굴의 리더십, 개혁에 대한 국민의 흔들림 없는 지지, 약체화된 파벌정치 체제)가 없어서다. 대신, 개혁 추진을 가로막는 요소(정부의 경기부양에 의존하는 경제 체질, 부패와 비효율의 ‘철의 삼각’ 먹이사슬, 총리의 리더십을 갉아먹는 파벌정치)가 건재해 있다.

한 가지 더 께름칙한 게 있다면 그것은 연립정권의 파트너인 국민신당의 대표 가메이 시즈카(<4E80>井<9759>香)의 존재다. 하토야마 내각에 이어 간 내각에서도 우정개혁·금융상을 맡고 있는 그는, 불황일 때는 (건설사업을 중심으로)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다. 또 그는 국채 매각의 채널인 우정사업을 민영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관해서는 한 치의 타협도 없는 인물이다. 오는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단독 과반수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국민신당을 품고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간 내각의 방향 설정, 특히 재정 건전화로의 정책기조 설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고이즈미 개혁은

집권 민주당이 인정하기 싫겠지만, 버블 경제가 붕괴된 1990년대 초 이후 일본 경제가 활력을 보이고 그래서 재정 사정이 나아진 기간은 딱 한 번 있었다. 바로 ‘잃어버린 10년’ 후 집권해 5년반 동안 개혁을 추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자민당 내각 때였다.

2001년 고이즈미가 집권했을 때의 정치·경제 상황은 지금과 유사했다. 미국 다음 가는 경제규모를 가진 일본 경제는 10번에 걸친 대규모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10년’과 그 디플레의 늪에서 벗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본 국민이 떠안게 된 것은 확대일로의 재정적자와 천정부지의 국가부채였다. 자민당 정권, 아니 정치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바뀌지 않으면 자민당을 부수겠다”는 공언을 서슴지 않던 고이즈미는 일본 경제 부활을 위한 개혁의 초점을 ‘철의 삼각’, 즉 정부 관료-정치권-업체 간의 끈끈한 먹이사슬을 끊어버리는 데 맞췄다. 업계에 돈과 표를 기대온 정치인들이 관료들을 독려해 특정 부문 정부사업 예산을 확보토록 하고, 관료는 그 정치인들의 비호 아래 출세와 정·관 간의 ‘원활한 소통’을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이 ‘철의 삼각’ 부패고리가 총리의 리더십을 좀먹는 파벌과, 비대 일로에 있는 관료주의와 정부 지출의 뿌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이즈미가 추진한 개혁은 한마디로 ‘작은 정부-큰 시장’ 개혁이었다. ‘민(民)에서 할 수 있는 건 관(官)에서 민으로 돌린다’는 구호를 내걸고, 정부 지출 감축으로 생긴 여유자금을 민간부문으로 돌리는 한편,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을 부추겨 기업활동을 촉진했다.

고이즈미 개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민간의 자생적 성장 체질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장기에 걸친 경기 회복과 호황 국면, 그리고 90년대 초 버블 붕괴 후 처음으로 세수 확대와 재정건전화의 기틀을 이끌어냈다. 이런 경제적 성과가 있었기에 2차 대전 후 두 번째로 긴 집권 동안 최저 4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민주당 정권이 기억하고 싶지 않을 또 한 가지는, 1955년 이후 자민당 장기집권과 하토야마 내각에 이르기까지의 55년 동안 집권 중에 각료나 주요 당료의 비리와 부패 문제가 불거지지 않은 정권 또한 고이즈미 내각뿐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고이즈미가 어느 파벌 영수와 의논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내각과 당에 자신의 개혁노선을 신봉하는 깨끗하고 유능한 인물을 기용한 덕분이었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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