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현대차의 ‘역발상’ 노사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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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한·중 합자 자동차 회사인 베이징현대차가 중국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파업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해법을 내놓았다. 노조 설립를 막기보다는 오히려 공회(工會:중국식 노조) 설립을 적극 장려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노동계의 연쇄파업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노사 소통을 강화하려는 역발상인 셈이다.

베이징현대차 노재만 총경리(사장)는 4일 베이징에서 한국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노사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들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앞서 베이징현대차는 지난달 28일 차체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인 성우하이텍 중국 법인에서 파업이 발생해 조업중단 위기를 경험했었다. 올 들어 5월 말까지 27만 대를 판매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9% 매출이 신장된 베이징현대차는 재고가 거의 없기 때문에 파업이 발생하면 생산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 때문에 베이징현대차 자체 생산라인뿐 아니라 부품 협력업체에서 크고 작은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응책을 펴기로 한 것이다.

노 총경리는 임금 인상 등 복리후생 개선 조치와는 별개로 협력업체 노사의 소통에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대립적인 한국적 노사관에서 벗어나 중국적 특수성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베이징현대차 임원들이 나서서 10만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 중인 150여 개 1차 협력업체를 상대로 “공회 설립에 적극 나서라”고 설득하고 나섰다.

노 총경리는 “협력업체는 대부분 한국에 본사를 둔 경우가 많다”며 “중국 공장 책임자가 앞장서 노조 설립에 동의해 달라고 본사에 요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베이징현대차 임원들이 한국 본사의 부품업체 오너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노사갈등 경험 때문에 부품업체 오너들이 노조 설립에 대해 생리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중국의 특성을 잘 살펴보면 공회가 경영에 부정적 영향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노사갈등이 처음엔 임금 인상 요구에서 시작되지만 갈수록 감정 대결로 비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공회가 있으면 완충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노 총경리의 판단이다.

노 총경리는 “공회가 설립되면 근로자들의 요구가 무제한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오너들도 있지만 중국 정부의 지휘를 받는 중화전국총공회(總工會:한국의 노총과 유사한 노동자 권익 대변 조직)가 산하 공회의 요구를 적절하게 조정해 주기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이징현대차가 협력업체에 공회 설립을 권유하기로 한 것은 2003년부터 공회를 설립해 노사 상생을 이어온 베이징현대차의 경험에 따른 것이다. 또 이번에 파업이 발생한 성우하이텍의 경우 공회가 없어 문제가 악화됐다는 게 베이징현대차의 진단이다. 노 총경리는 “성우하이텍의 파업 직후 현장을 방문해 보니 2500여 명의 임직원 중에서 부장 이상은 모두 한국인이었고, 생산 현장에서 과장급 3명만이 중국인이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원활한 노사 소통이 불가능해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베이징현대차는 협력업체에 공회 설립을 권유하되 강요하지는 않기로 했다. 노 총경리는 “협력업체들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최종 판단은 개별 업체가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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