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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감염돼도 숨지 말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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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만일 내가 에이즈에 걸린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가정이다. 감염자로서 겪어야 할 생물학적 고통은 물론 가족과 사회로부터 쏟아질 냉대와 비난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산하 에이즈 감염자 모임인 K플러스(www.k-pluss.com.02-747-4070-2)회원들에게선 절망보다 희망의 빛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남자가 감염자란 사실을 알고도 결혼해 아기까지 낳은 여성이 있습니다. 아기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 모임의 회장인 김지운(39)씨는 에이즈 감염자에게도 기회가 있음을 역설했다. 일본 유학시절 신원 미상의 여성과 성관계 후 감염됐다는 김씨는 이미 가족들의 용서와 이해를 구한 상태.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리면 바로 가정 파탄으로 이어진다는 일반인의 생각과는 다르다.
감염자가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동성애자란 생각도 사실과 다르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평소 성실했던 사람이 한두차례 실수로 감염된 경우가 많다는 것.
대기업 중역으로 근무하던 K씨는 신체검사에서 우연히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다. 만취한 상태에서 접대부와 콘돔 없이 성 접촉을 가진 기억 밖엔 없었다. 아내의 용서를 구한 K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조그만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를 정년퇴임한 L씨는 수 년 전 태국으로 여행갔다가 마사지 걸에게서 감염됐다. 아내와 자식들은 모두 죄책감에 시달리는 L씨를 이해하고 그의 치료를 돕고 있다.
'코리아(K)에이즈 양성(플러스)'이란 뜻으로 1997년 설립된 K플러스엔 현재 1백50여명의 감염자들이 가입해 있다. 정부 예산으로 마련된 대학로의 한 가정집에 이들의 쉼터가 있다.
최신 치료와 관련한 정보도 교환하고 여행이나 레크리에이션 등 동병상련의 기회를 갖는다.
이들은 에이즈에 감염되더라도 숨지 말 것을 권유한다.
에이즈는 불치병이 아닐 뿐더러 보건복지부에 등록할 경우 국가에서 무료로 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
감염자의 신상은 배우자를 제외하곤 가족과 직장에도 일절 통보되지 않는 등 사생활이 철저히 보호된다. 이사 때 신고하고 6개월마다 한번씩 혈액검사를 받는 의무가 있을 뿐이다.
서울대병원 내과 오명돈 교수는 "여러가지 에이즈 치료제를 동시 투여하는 칵테일 요법을 받을 경우 면역결핍 증세로 사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옮길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며 "일부에선 약을 끊어도 재발하지 않는 완치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권관우 사무총장은 "에이즈는 포옹·목욕·키스 등 일상생활에서 감염될 확률은 거의 없다"며 "에이즈 감염자를 부도덕한 죄인으로 냉대할 경우 안으로 숨게 되고 이 경우 일반인들에게 훨씬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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