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힘 앞세워 北에 강한 '채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거듭된 대북(對北) 강경 경고발언은 많은 혼동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한쪽 공간에서는 정부관리들이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말하고, 다른 쪽 공간에서 대통령은 북한을 위험스런 불량국가이자 '악의 축'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있다.부시 대통령의 진의는 무엇일까.
한·미 관리와 전문가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대체적인 윤곽은 '제한적 대화론'이다. 요약하면 부시의 발언이 비록 거칠지만 그렇다고 군사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일단 강력한 압박을 통해 북한을 통제하고 변화시켜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에 나와도 클린턴 대통령 때보다는 미국의 조건이 훨씬 까다로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대화는 하지만 '제한적 대화'라는 것이다.
우선 '군사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부분은 미 관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국정연설에 대해 "군사행동이 임박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란·이라크와 달리 북한은 군사력이 강하고 동맹국인 한국이 인접해 있어 미국의 군사행동에 엄청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압도적 다수론이다.
그러므로 부시가 진짜 노리는 것은 대북 압박이라는 분석이 많이 등장한다. 한반도 전문가인 마커스 놀런드 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부시 발언은 북한에 대한 압력을 높임으로써 그들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 양국간 현안에 대한 해결을 고무하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부시는 후보 시절부터 클린턴식의 대북 유화책은 고려하지 않았고, 당선되자마자 대북정책 재검토에 들어갔다. 부시는 힘을 내세우며 협상한다는 공화당식 외교관(外交觀)을 갖고 있다. 9·11 테러라는 충격적 사건과 대 테러전쟁을 치르면서 이런 시각은 더욱 굳어졌다. 양성철(梁性喆)주미대사는 "공화당 정권은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뭔가 당근을 준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부시는 우선 북한에 세 가지 압박을 가하고 있다. 첫째로 부시는 북한이 진행하고 있는 행동을 통제하려 한다. 핵개발과 미사일 수출의 중단이 그것이다. 둘째로는 북한의 변화와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행동을 원한다. 예를 들어 휴전선에 집중 배치된 재래식 전력을 후방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셋째로 미국은 핵·생화학무기·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고'를 해체하는 것을 장기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6일 부시 대통령은 재검토한 대북정책을 발표하면서 핵·미사일·재래식 전력을 3대 의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것이 대화의 전제조건은 아니라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든 북한과 만나겠지만 일단 이런 문제들에 대해 북한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부시 정권의 생각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