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전은 우리에게 결승전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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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호 16면

김호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

나는 1979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를 통해 감독으로서 처음 국제무대를 경험했다. 일본에서 열린 이 대회를 통해 마라도나가 전 세계에 놀라운 재능을 증명했다. 한국은 파라과이(0-3 패), 캐나다(1-0 승), 포르투갈(0-0 무승부)과 조별리그를 했다. 정용환ㆍ최순호ㆍ이태호 등 좋은 선수들이 출전했다. 그러나 1승1무1패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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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는 상대 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이 대회에서 어떤 공을 사용하는지조차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쉽다. 대회 공인구인 탱고볼을 가지고 훈련해 보고, 파라과이 선수들에 대해 얕은 정보라도 있었다면 더 나은 성적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이때의 경험을 마음에 새긴 나는 이듬해 독일의 하노버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우물’ 밖의 세계를 모르고는 더 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시 국제무대를 맞이한 것은 15년 뒤인 94년이었다. 미국 월드컵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의 전임감독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본선 무대를 밟은 사실은 축구팬 모두 알고 계시리라. 미국행 티켓을 차지하는 과정 못잖게 본선 세 경기 또한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스페인(2-2 무승부), 볼리비아(0-0 무승부), 독일(2-3 패)과 모두 좋은 경기를 했다. 그러나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모든 경기의 결과가 아쉬웠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79년 파라과이와의 경기, 94년 스페인과의 경기가 모두 성공과 실패의 분수령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라과이와는 다시 붙었다면 이길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첫판을 세 골 차로 졌지만. 스페인과 비겨 아시아 축구의 가능성을 보여 줬지만 한 걸음이 부족했다. 파라과이나 스페인의 공통점은 우리의 첫 상대였다는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나의 경험은 남아공에서도 우리 대표팀이 첫 경기 결과에 따라 다른 운명을 맞으리라는 사실을 예감하게 한다. 2002년에 한국 축구가 4강 신화를 쓸 수 있었던 힘은 폴란드를 2-0으로 누르면서 상승기류를 탄 데서 나왔다. 2006년 독일에서 첫판 상대인 토고에 역전승했기에, 전력 차가 큰 강호였던 프랑스에 첫 골을 내주고도 1-1로 비길 힘을 얻었다.

남아공에서 우리의 첫 상대는 그리스. 2004년 유럽 챔피언이다. 물론 강한 팀이고,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을 통해 이런 스타일의 팀을 이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게 됐다. 그러나 결코 우회해서는 안 되는 벽이다. 이 벽을 돌파해야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를 상대할 힘이 생긴다. 내가 보기에 그리스는 이길 수 있는 상대다. 그리스와의 경기를 결승전으로 생각하고 집약한다면 첫 승리의 제물로 삼을 수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잘 준비해 온 팀이고, 협회와 선수단의 불화라든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이의 의견 불일치도 없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한결같은 신뢰가 축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력 선수들이 유럽 리그를 마치고 지쳐 있다. 나이지리아는 협회와 선수 간의 갈등이 큰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의 기회는 대회 초반이다. 예감도 나쁘지 않다. 우리 선수들의 투혼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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