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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壽 여성장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99년 6월 또 한명의 여성이 환경부 장관에 임명됐을 때 '얼마나 오래 그 자리를 버텨내나 보자'는 짓궂은 농담이 나돌았다. 온갖 시비에 말렸던 역대 환경부 여성장관들에 대한 야유였다. 초여름 찬바람 속에서 등장한 당시의 김명자(金明子)장관이 이번주초 개각에서 또 유임됐다. 장관 재직 31개월. 국민의 정부에서 최장수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이미 엘리트 여성들의 연구 대상이 됐다. 남성들이 지배하는 정·관계의 묘한 역학구도에서 그가 소리없이 환경정책을 펴나갈 수 있는 장수비결에 대해 갖가지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金장관은 전문성으로 무장하고 있다.과거의 학력·경력 등이 환경업무와 깊은 연관성을 가졌다.3대강 수질개선 대책, 세계환경문제 등에 대한 소신을 내세울 기반이 구축됐다.공무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 듣는다'가 아니라 거꾸로 '알아듣게 할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다.
-조직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취임 이후 여러 차례의 인사에서 3백50여명을 승진시켰고 이에 따른 반발은 최소한에 그쳤다. 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엄격했다.
-시민단체·학계·언론계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능력을 보였다. 그는 특정조직과의 마찰도 잘 소화해냈다. 각료가 되기 전 시민단체의 자문역할 등을 맡으면서 다양한 견해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이 돼 있다. 비판자의 입장에 선 언론의 속성을 읽고 '환경친화적 언론'에 관심을 보여왔다.
-남성의 벽을 '여성스러움'으로 돌파하고 있다. 이해관계자들을 설득시키는 교섭력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지금까지 여성장관들은 성격이 강하고 때로는 투쟁적이었으나 그는 유연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스타일로 정책을 추진했다. 까다로운 국회와 예산당국도 그를 이해하는 편에 섰다. 3대강 물관리 종합대책을 둘러싼 군중시위에 공권력 투입을 거부하고 자신에 대한 화형식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강인한 성격과 여성스러운 접근의 효과였다. "남자장관이었더라면 한바탕 덤벼들 터인데-"라는 불만도 수그러들었다.
-민원이 많고 이해충돌이 잦은 환경부에서 정권에 부담이 될 일들이 사전에 잘 처리되고 있다는 점을 김대중 대통령이 만족스러워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金장관의 업무추진력이 앞으로 예상되는 여성장관 시대에 어떻게 평가될지 관심거리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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