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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강경 치닫는 北·美 관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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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반도 정세가 난기류에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한 데 대해 북한이 "선전포고"라고 맞대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로선 북·미 관계 악화의 파장 최소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으나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고민이다. 향후 북·미 관계를 전망해보고 양국 현안의 쟁점을 알아본다.
편집자| 양국 관계는 지난해 1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순탄치는 못했으나 '대결국면'은 아니었다. 그러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평화위협국'으로 규정하고, 북한도 이를 "사실상의 선전포고"라며 반발하고 나서 팽팽한 긴장 국면으로 들어선 것.
1일 공개된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은 "(북한이)강력한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그뜬하게 갖췄다"면서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릴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부시 대통령에게도 "망발과 험담만을 일삼아온 부시"라고 인신공격성 비난까지 동원했다.
특히 부시의 연설 내용이 자신의 뿌리 깊은 대북 불신에 무게를 둔 게 분명하다는 점에서 향후 북·미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
최진욱(崔鎭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0일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할 부시 대통령은 일본에 먼저 들러 괴선박 격침 사건으로 고조된 대북 강경 분위기를 접하고 서울에 올 것"이라면서 "북한이 미국측에 상당한 양보를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테러전쟁의 불똥이 당장 평양으로 튀지는 않겠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등 미국의 대북 압박 프로그램이 파상적으로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화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성명 말미에 '미국의 움직임을 주시하겠다'며 여지를 남긴 데다 '민주당 행정부 시기에는 볼 수 없었던' 등의 표현으로 과거 빌 클린턴 행정부 때와 같은 북·미 관계 진전을 기대하는 메시지를 행간에 담았다.
미국측도 "수사적 표현을 확대해석 말라"(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북한과의 대화가 긴요하다"(리처드 바우처 국무부대변인)는 등 수습에 나섰다.
미 국무부는 부시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각국 대사관을 통해 주재국에 설명토록 했고, 에번스 리비어 주한 미국공사도 1일 "미·북 대화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우리 정부에 전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는 물론 남북 당국간회담 재개에도 선별적으로 호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는 하나 이른 시일 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오는 20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가 북·미 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의 윤곽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환·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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