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 보안법 변칙 상정 싸고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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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국회 법사위는 평온했다. 고함과 몸싸움의 수라장이었던 전날과는 달리 회의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열린우리당이 보안법 폐지안의 연내 처리를 유보하면서 긴장이 사라진 탓이다.

열린우리당 선병렬 의원이 신상발언을 하려 했으나 최연희 위원장은 "시간이 없으니 법안부터 처리하고 보자"며 분위기를 '일'을 하는 쪽으로 몰아갔다. 그래서 중소기업창업지원법 개정안 등 각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들에 대한 심의 및 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처리된 법안들은 대체로 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큰 이견이 없는 법안들이었다.

다만 끝날 무렵 열린우리당이'6일 상정된 보안법 폐지안과 형법 보완안에 대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계속 상정해 달라'는 내용의 동의안을 제출하며 재상정을 시도해 잠시 소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최연희 위원장은 이를 거부하고 서둘러 산회를 선포, 여당의 재상정 시도는 무산됐다.

여당의 보안법 폐지안 변칙 상정 시도의 후유증은 오히려 여당 내에서 표출됐다. 의원총회에서 임종인 의원은 "폐지안 상정은 우리가 독립운동.민주인권 세력의 적자(嫡子)임을 그대로 드러낸 쾌거"라고 주장했다. 이어 "돌아가신 신채호 선생이 '천정배 어제 훌륭했어', 문익환 목사가 '최재천 정말 훌륭했어'라고 말할 것"이라고 칭송했다.

사회를 보던 정청래 의원도 "백범 김구 선생도 그럴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당 내에서 보안법 문제에 대해 온건하고 유연한 입장을 밝혀온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 간사인 안영근 의원이 나서 천정배 원내대표 등을 공격했다. 그는 "4년 전 민주당 부총무였던 천 대표가 운영위에서 교섭단체 요건 완화 문제와 관련해 어제와 똑같은 식으로 날치기 처리했다"며 "법사위에서 엉터리 통과를 한 데 대해 스스로 만족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이 "날치기 아니야"라고 고함을 질렀음에도 안 의원은 "지금까지 진행된 4개 입법 과정에 대해 천 대표가 잘못됐음을 인정해야 하며 보안법을 정기국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천 대표의 사퇴를 거론한 것이다.

이에 운동권 출신인 우원식 의원이 "안영근, 한나라당으로 가라"고 소리쳤고, 안 의원은 "야 인마, 까불고 있어"라고 맞받았다. 386 운동권 출신인 정봉주 의원이 퇴장하면서 안 의원을 향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하자, 이번엔 김부겸 의원이 "함부로 말하지 마. 그런 시각이 있다는 것도 들어야지"라고 면박을 줬다. 이런 소란에 대해 천 대표는 "당내 이견 해소는 동지애를 기반으로 해서 이뤄져야 하는데 오늘 그런 원칙을 벗어나는 장면들이 있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당내에선 성향이 다른 의원들 간의 갈등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등의 관측이 나왔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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