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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월드컵 아프리카, 여성들을 ‘주전 멤버’로 기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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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가 다시 세계적 관심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지구촌의 특별한 축제인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은 개최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동반자로 여기고 있다.

월드컵은 아프리카 여성들이 이 거대한 대륙의 발전을 위해 갈수록 핵심 일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라이베리아의 엘런 존슨 설리프(71)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선거로 뽑힌 여성 대통령이다. 그는 대륙의 여성 발전상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르완다에선 하원의원의 50% 이상이 여자인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또 남아공과 레소토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性) 평등지수’에서 나란히 상위권에 포진해 있을 정도다.

분쟁과 폭력의 끔찍한 상처로 얼룩진 아프리카를 치유하고 긴장을 다독거리는 건 바로 여성이다. 갈등의 실마리를 찾고, 화해의 손길을 끌어내며, 평화와 학대 방지의 제도적 틀을 짜내는 것도 여자다. 특히 언론과 시민사회·지역을 망라해 할 일이 산더미 같은 가운데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고 해법을 찾아내며 주도권을 쥐는 데서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성 차별이 골칫거리다. 아프리카의 여아(女兒)들은 아직도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는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다만 10년 전보다 많은 소녀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졸업장을 받는다는 건 고무적이다. 사실 교육은 아프리카의 발전에 반석 같은 존재다. 특히 교육받는 여성들이 늘수록 아프리카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남녀 간 교육 격차를 줄이지 못하는 나라에 관심의 초점을 돌려야 한다. 이런 나라의 정부는 정치적 의지를 갖고 묘수를 짜내 실행해야 한다. ‘아프리카 발전 패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는 정책을 짠 뒤 현장에서 바뀌는 조변석개(朝變夕改) 체질을 큰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했다.

아프리카에서 개선돼야 할 약점은 또 있다. 경제 쪽에서 여성들의 자질과 잠재력을 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눈을 들어 대륙의 들판을 보라. 씨앗을 뿌리고 곡물을 거두는 사람은 여자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흥정하면서 사고 파는 건 여성이다.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부(富)를 전파하는 것도 여인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아프리카 경제를 끌고 가는 모태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헌도는 늘 평가절하되는 데다 비즈니스에의 야망도 좌초되기 일쑤다. 여성들은 경제활동에 필요한 업무교육과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정부당국의 차별주의와도 맞서 싸워야 한다.

가장 치명적 충격은 금융 소비자로서 여성을 차별대우하는 것이다. 예컨대 소농(小農) 대출금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그치고, 전체 농업 대출에선 여성 혜택이 1%에 불과하다. 여성이 아프리카 대륙의 식량을 80% 책임지는데도 말이다. 땅을 남자들에게 물려주는 관습도 여인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아프리카는 먹고 남은 식량을 다른 나라에 수출할 잠재력이 있다. 그게 현실이 되려면 농업에서 여성의 역할을 각인하는 정책을 짜고, 그들이 ‘녹색 혁명’을 일으키도록 북돋워야 한다. 무엇보다 낡은 규범 탓에 여성들이 자산을 쌓지 못하면 창업을 하고 업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돈도 손에 쥐지 못한다. 여성들이 싹을 틔운 작은 회사들이 버젓한 기업체로 성장할 수 있지만, 그들이 접근 가능한 창업용 자본은 전체의 10%에 그친다. 돈이 부족한 사업자들에게 소액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도 여성들을 차별대우할 때가 많다.

이런 문제는 비단 소상공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최근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열린 ‘아프리카 여성 경제인 회담’에 참석했을 때 카메룬에 건설회사를 세운 여성의 사례가 화두였다. 그는 사업을 꾸리기 위해 큰 돈이 필요해 금융회사를 찾아갔더니 자영업자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금융회사들은 돈에 둘러쳐진 장벽부터 제거해 줘야 한다. 유엔의 ‘밀레니엄 개발 목표’가 설정한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려면 경제와 금융에서 여성에 대한 장애물이 없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금융 서비스와 금융상품에서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정부와 핵심 이해당사자들이 여성의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울타리를 부숴버린다면 아프리카의 미래는 밝다. 그 열매는 여성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사람이 맛보게 될 것이다.


그라사 마셸=모잠비크의 고(故) 사모라 마셸(1933~86) 대통령의 미망인으로 넬슨 만델라와는 98년 결혼했다. 2개국 대통령과 결혼한 여성은 그가 처음이다.

ⓒProject Syndicate

그라사 마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부인) /‘아프리카 발전 패널’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