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역사의 ‘작용과 반작용’을 잊었던 집권세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한나라당이 2004년 4월 총선 대패(大敗)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역풍을 맞아 의회 과반수를 잃었다. 그 직후 심기일전(心機一轉)해 부활의 궤도에 들어섰고, 재·보선에서 잇따라 승리하더니 2006년 지방선거에선 호남을 제외한 전국을 싹쓸이했다. 한나라당은 드디어 2008년 집권했으며 그해 4월 총선에선 의회 권력까지 탈환했다. 한나라당의 기세(氣勢)는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집권당이 된 한나라당은 2008년 여름 광우병 촛불사태로 휘청거리더니 지난해 4월과 10월 재·보선에서 연패했다. 두 번의 선거는 쓰나미(지진해일)가 몰려온다는 신호였다. 특히 10월 선거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수도권의 차가운 민심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다 충청권의 세종시 동요까지 겹쳐 위기의 먹구름은 짙어져 갔다. “집권당이 수도권에서 크게 패하고 충청권을 내줄 것”이라는 전망이 늘어갔다. 그러나 위기의 대목에서 집권세력은 일시적인 마취제에 취했다. 정권은 40%를 넘는 대통령 지지율과 천안함 안보사태 분위기에 낙관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와 국민의 선거민심은 다른 것이었다. 천안함도 대세를 막지는 못했다. 결국 6·2 지방선거에서 쓰나미는 왔으며 한나라당은 지방권력의 상당 부분과 핵심 교육권력을 내주었다.

민주화 이래 한국 선거사(史)에는 ‘작용과 반(反)작용’의 법칙이 있다. 권력이 오만하고 부실하면 민심은 총선이나 지방선거로 견제했다. 그래도 바뀌지 않으면 아예 권력을 교체했다. 2000년대만 봐도 열린우리당은 이 법칙으로 인해 정권을 놓았다. 한나라당에도 그 법칙은 준엄하게 적용됐다. 지난해 재·보선 실패 후 정권에는 대대적인 국정쇄신 요구가 쏟아졌다. 친이·친박계로 상징되는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고, ‘밀어붙이기’ 정책 추진을 경계하며, 오만한 권력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권은 이를 지키지 못했다. 세종시 수정안은 필요한 것이지만 사전 소통이 부족했고, 논란이 많은 4대 강은 한꺼번에 시행됐다. 속도 빠른 수월성 교육 강화도 중산층·서민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단계적으로 국민의 이해를 구하면서 해야 하는 것을 급작스레 밀어붙이니 권력이 오만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게다가 보수의 분열은 여전했다. 세종시 문제로 친이·친박은 더 갈렸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과 진보는 후보 단일화로 똘똘 뭉쳤는데 보수 출마자들은 분열했다.

정권이 국정쇄신을 과감히 하지 못하면 반(反)작용은 계속될 것이다. 당 지도부가 물러나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의를 표함으로써 정권은 당·정·청 개편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 같다. 물론 인적 쇄신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쇄신의 본질은 국정의 소프트웨어(software) 쇄신이다. G20 정상회의 주최나 대규모 원전 수주 같은 성과는 훌륭한 정권의 업적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상과 민생의 무게에 눌려있는 일반 국민에겐 잘 와닿지 않는다. 많은 국민이 개발·교육 정책의 거센 파도 속에서 뭔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지 정권은 보살펴야 한다. 이런 게 진정한 쇄신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교훈은 승리한 야당에도 해당된다. 민주당은 정권 상실 2년3개월여 만에 지방선거에서 대(大)약진하는 ‘권력 회복’을 기록했다. 의석 100석도 안 되는 당세(黨勢)를 가지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정도의 승리에 취해 과속하면 안 된다. 정세균 대표는 어제 대결적 대북정책을 전면 폐기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46명 장병의 희생을 선거에 이용한 데 대해 사죄하라”며 군 책임자의 즉각 문책을 요구했다. 천안함 장병은 지방선거가 가까운 시점에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희생된 것이며, 정부의 조사와 조치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남북교류 전면 중단과 대북심리전, 안보리 회부, 북한 선박 통행금지 같은 대북 조치는 필수적인 것이다. 북한이 대가를 치르게 해서 재발을 방지하고 남한의 단호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권이 사태를 선거에 이용했다고 문책 운운하는 건 북한의 살인행위라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장병들의 비참한 희생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포퓰리즘적 접근이다. 국가안보를 위한 초당적 대처라는 명제로 볼 때 ‘단호한 대북조치’는 민주당이 반대할 게 아니라 오히려 적극 지지해야 하는 사안이다.

선거는 외교·경제·복지 등을 놓고 여야가 민심을 얻으려 치열하게 다투는 민주주의 과정이다. 결과로 나타난 민심은 이런 분야의 정책 수행에 적절히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국가안보 문제의 경우 선거 결과의 정치적 파장에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천안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안보리 회부와 중국 설득, 교류·협력·대북홍보 등과 관련해 국민에게 천명한 조치들을 차질 없이 수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