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아프간 난민 자해시위 파문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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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호주 외국인 수용소에 수용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극단적인 자해 농성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호주 야당이 유엔의 개입을 요청하고 다른 수용소 난민들도 동조농성에 나서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 극렬 농성=지난 23일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에서 4백75㎞ 떨어진 우메라 수용소.

어린이와 어른 62명 등 모두 2백2명이 힘없이 누워 있다.

지난 15일 이래 8일째 계속된 단식농성으로 탈진한 상태다.

농성자 7명은 유독성 세척제를 삼키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 병원으로 실려갔다.

놀랍게도 7~8세 되는 어린이 18명의 입이 꿰매져 있다.

일부 어린이들의 입은 부모가 보는 앞에서 다른 성인 난민들이 강제로 꿰맨 것으로 알려졌다.

또 농성에 참가한 어린이 36명 중 일부는 자기 가슴을 칼로 찌르고 독성물질을 삼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이 외부에 공개되면서 호주 남동부 빅토리아주 주도 멜버른의 마리비르농 난민센터의 난민 35명도 동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 극단행동의 배경=이들 난민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밀항 끝에 호주로 들어오다 체포된 사람들이다.

주로 하자라족인 이들은 탈레반 치하를 떠나 2년 전부터 이곳에 수용됐으며 가장 최근에 들어온 사람은 3개월 정도 체류했다.

이들이 극단적인 농성에 들어간 이유는 호주정부의 강경방침 때문이다.

호주정부는 이들 대부분을 불법입국자로 분류하고 법정 구금 연한인 3년이 지나면 강제 추방한다는 냉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복.필기구 소지마저 엄격히 제한되는 비인간적 대우를 참아가며 구금을 견뎌 온 난민들이 호주정부의 강제추방 방침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극단적인 행동에 들어갔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 호주의 곤혹스런 입장=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극단적인 단식농성 사실이 알려지면서 필립 루독 이민장관의 고위 보좌관인 네빌 로치가 23일 항의성 사임을 발표하고, 야당인 민주당이 같은 날 유엔에 수용소 감독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는 등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호주정부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단식농성에도 불구하고 호주정부는 난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극단행동을 벌인다고 섣불리 받아들였다간 계속해 밀려들 난민들을 막을 명분이 없어진다는 걱정 때문이다.

호주정부는 "지난 4년간 중동계 난민 지원에 2천만달러(약 2백60억원) 이상을 기부해 온 호주를 이번 사태 하나만으로 부도덕 국가로 매도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국제사회가 난민문제를 공동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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