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드컵 맛 탐방] 빛고을은 '먹거리 천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3면

빛고을 광주(光州)광역시엔 먹을 것이 많다.

종류의 다양성뿐 아니라 값도 싸고 양도 넉넉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광주 땅에서 식사시간을 맞는 것이 달갑지 않다고 역설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매번 어떤 음식점을 골라야 할지, 식탁에선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풍요 속 빈곤이라고나 할까 정작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없다.

서강정보대학 식품영양학과 고대희 교수는 "광주 음식은 독창적으로 내세울 것은 없지만 우리나라 최고라고 하는 남도 음식의 정수(精粹)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음식문화에 관한 한 한반도에서 지형적으로 가장 유리한 지역이 전라남도다. 기름진 호남평야에서 기본 먹거리인 쌀이 부족함 없이 생산되고,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잡힌 이런저런 수산물은 식탁을 풍요롭게 만든다.

여기에 감칠 맛을 더해주는 양념류는 앞 산과 뒤 뜰에서 넉넉하게 자란다. 이런 남도의 지역적 중심지인 광주가 이들 음식문화의 중추 역할을 해오며 '먹거리 천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광주의 향토음식연구가 양영숙씨는 "광주의 음식을 제대로 맛보려면 한정식이나 백반집을 반드시 찾아볼 것"을 권한다.

특히 고급 한정식에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남도의 유명 음식들이 고루 고루 식탁에 오른다. 따라서 매콤하면서 짭짤하고, 연한 듯하면서도 깊은 남도의 맛을 한 자리에서 종합적으로 느끼고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고.

광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모 한정식집의 상차림을 살펴보자. 제일 먼저 식탁에 선보인 것은 매생이국이다. 매생이는 김처럼 여리고 부드러운 해초로 청정해역인 해남산을 으뜸으로 친다.

다음은 흑산도의 홍어회. 삭힌 흑산도 홍어의 톡 쏘는 맛은 서울 등 다른 지역의 한정식 집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음식이다.

식탁에 놓인 기본 밑반찬에는 김치.젓갈.장아찌류만 20여가지에 이른다. 지역 행사로 여덟차례나 치러낸 '광주 김치축제'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김치.젓갈.장아찌 모두 썰거나 그릇에 담은 모양새가 정갈하기 그지 없다.

광양의 전어 무침.여수의 갓김치.담양의 죽순 회.곡성의 민물 게장.나주의 토하젓.풍천의 장어 구이.목포의 연포탕과 갈치 구이. 이어서 상에 오르는 음식 중에 독특한 것만 골라 나열한 것이다. 후식인 유자차도 고흥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만든 것이란다.

시내에 있는 허름한 백반집에서도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은 맛볼 수 있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겐 특별한 남도 음식이 광주 사람들에겐 평상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광주의 음식점에는 문화도 있다. 낡은 건물의 보잘 것 없는 음식점이라도 실내엔 예술성이 보이는 서화(書畵)한 두 점이 걸려 있다. 이가 빠진 백자도자기나 난 화분을 창가에 둔 곳도 있다. 웬만한 음식점에선 식기나 수저 하나도 신경 써서 고른 것이 느껴진다.

동원F&B 광주공장장 최성훈 부장은 "광주의 음식점은 배만 채우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편히 달래는 정서와 여유를 함께 얻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유지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