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12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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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점성이 뛰어난 일관 품여가 오자 김균정이 물어 말하였다.

"그대들의 보고는 잘 받았다. 그런데 도대체 태백성(太白星)이 어떤 별이냐."

그러자 품여가 대답하였다.

"태백성이라 하면 하늘에서 해와 달 다음 세번째로 밝은 별이옵니다. 저녁때 서쪽하늘에서 반짝일 때는 개밥바라기 또는 장경성이라고 하며,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반짝일 때에는 샛별 또는 명성(明星), 또는 계명성(啓明星)이라고 부르고 있는 별이나이다."

"그러하면."

김균정이 다시 물었다.

"태백성이 달을 범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김균정이 물었으나 품여는 감히 입을 열어 아뢰지 못하였다.

"내가 묻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대답하지 못하느냐."

원래 일관은 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천문보다는 점성술에 의해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복자노릇까지 겸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관을 일자(日者)라고 낮춰 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하늘에선 해가 제일 밝으며, 그 다음에는 달, 그 다음에 태백성이 세번째로 밝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이까. 그러므로 태백성이 달을 범할 수는 없나이다."

"하나, 그대는 태백성이 달을 범하였다고 기록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그것은."

품여가 몸을 떨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느냐."

"상대등 나으리."

재삼재사 재촉을 받자 품여가 대답하였다.

"나으리. 예부터 천기(天氣)는 천기(天機)라 하였나이다. 즉 하늘의 천문에 나타나는 징조는 천지조화의 비밀이라 하였나이다. 따라서 천기를 누설할 시에는 성명(性命)을 보전하지 못한다고 하였나이다."

"하지만 그대는 일관이 아니더냐. 일관은 마땅히 별을 통해 나라의 안위와 길흉을 점지해줄 의무가 있음이 아닐 것이냐. 말하라. 말해 보거라."

그러자 품여가 주위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상대등 나으리. 그러하시면 주위 를 물리쳐 주시옵소서."

주위라 해봤자 몇 명의 근신들뿐이었다. 그러나 김균정은 이들을 물리치고 단 둘이만 남게 되자 간신히 품여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으리께오서 소인의 성명을 보존해 주시겠나이까. 먼 훗날에도 소인의 혓바닥을 잘라 벙어리를 만들지 않으시고, 소인의 눈동자를 찔러 소경을 만들지 않으시겠나이까."

"여부가 있겠느냐. 걱정하지 말고 이실직고하거라."

그제서야 품여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으리께오서도 잘 아시다시피 정월 초하루에는 일식이 있었나이다. 뿐 아니라 지난달에는 패성이 동쪽에 나타났었나이다."

품여의 말은 사실이었다.『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기록돼 있다.

"흥덕대왕 11년 6월.

'요사스런 별(妖星)'인 패성이 동쪽 하늘에 나타났다."

패성은 하늘에 고정적으로 나타나는 붙박이별이 아니라 느닷없이 나타나는 혜성(彗星)으로 흔히 살별이라 불렸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긴 꼬리를 끌고 나타난다 하여 꼬리별, 혹은 미성(尾星)이라고 불리는 별이었던 것이었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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