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화상을 위하여'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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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시인 홍신선(58)씨가 여섯번째로 펴낸 시집 『자화상을 위하여』에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더 빠른 순환 속도를 요구하는 시대의 풍경이 아프게 묘사돼 있다. 그 이윤이 욕망의 실현 수단인 돈이건, 끝을 모르는 욕망 그 자체건 사람을 허우적대게 하는 폐허임은 시인에게 틀림없는 일이다.

"세기말을 오르다/내려다보는 골짜기 밑의/신흥 문명의 폐허들//시멘트 고층 아파트단지와 고속도로, 프로야구 끝내고는 비디오./혹은 마이카 뒤 트렁크에 윤락과 권태들 싣고 달리다/마음 뒤집힌 전복?/혹은 택배(宅配)로 주워 싣는/관능들/수많은 풍경들."('세기말을 오르다가'중)

이런 풍경들에 대고 시인은 이 시에서 짐짓 "이 정도에 목숨 망해?/인류망해?"라고 풍자적으로 눙치다가 다시 "숱한 나는 누구인가?/너는?"이라며 마음을 다잡기를 주문한다. 남루한 욕망들만 가득차 폐허처럼 변한 도시에서 버텨내기 위한 마음 다잡기는 '자화상을 위하여''혁명''느림을 위하여' 등의 시편으로 이어진다.

"중세 고행자같이 제 몸과 마음을 치다가 쉬다가/졸다가 깨다가…"('자화상을 위하여'중)도 가야만 하는 길이 있으니 그곳은 "내 그렇게 살다 가리/아침저녁 까치 소리 속에/아직도 내 어린 날 눈물 쏟던 마음이 남아서 까작까작 꺾이고 부러지는/시골에 살리"('시골에 살리'중)에 나오는 고향집이다.

세상에 대적할 힘이 후드득 꺾일 때마다 떠올리는 고향은 다른 시간, 다른 욕망의 회로에 있는 저편의 기억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시인에게 힘을 준다.

현실속에서 따사로운 봄날의 산(山)마저 '봉두난발 잡범처럼 끌려 나온' 산이지만 그곳에는 "물오리나무떼들이/제 둥근 속 내부에다 번민처럼 기르던 바람 맑은 소리들을/목청껏 쏟아놓는다/오오냐 오냐 다시 일어서마/오오냐 오냐 다시 일어서마"('봄산'중) 외치며 살고 있기에 희망을 키울 수 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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