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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만남] 노래와 명상 이야기-김도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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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과, 대가 없이 순수한 만족감으로 몰두하는 '자기만의 일'을 꿈꿉니다. 빠듯하게 짜인 따분한 일상, 반복적이고 강제적인 '돈벌이로서의 일'에 지쳐 있기 때문일 겁니다. 유명인들이 꾸는 꿈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 깊은 세계로 들어가봅니다.

"지하철에서 또는 버스에서(인터넷 할 때 TV 볼 때)/쓸데없이 잡담 말고 졸지도 말고/조용히 항문을 조입시다/정신차려지고 기분이 좋아져/가끔씩 조이면 정말 좋아/조용히 조였다 놨다 조였다 놨다/everybody 항문을 조입시다(중략)"

지난 17일 밤 서울 강남역 부근의 한 디스코클럽. 10~20대 1백여명이 빠른 리듬에 몸을 맡기고, 이 '엉뚱한'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다.

일부는 눈을 감고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대부분 노래가 끝날 때까지 키득키득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명상 음악가 김도향(57)씨가 지난달 만 20년 만에 내놓은 독집 앨범의 타이틀곡 'Everybody-항문을 조입시다'는 '똥꼬송'이란 애칭으로 이렇게 10대들을 사로잡고 있다.

왜 하필이면 입에 올리기 껄끄러운 단어 '항문'일까. 김씨는 이에 대해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20년 명상의 정수가 담긴 곡"이란다. 항문을 조임으로써 정신의 정화가 가능하다는 것. 국운(國運)도 항문 죄기에 달렸다고 할 정도로 설명은 거창하다.

"영혼과 육체를 연결하는 일곱 개의 혼줄이 있습니다. 이게 느슨해지면 정신이 흐려지면서 욕을 내뱉게 되죠. 그런데 요즘엔 어른들은 물론 청소년들까지 이 혼줄이 느슨해져 있습니다. 이때 항문을 조여주면 혼줄이 당겨지면서 영육이 치유되는 겁니다."

따라서 '똥꼬송'은 일종의 행동 명상법 캠페인 곡이다. 현대인들은 머리가 뜨겁고 배가 차갑게 마련인데, 이 가사대로 실천하면 기의 흐름이 반대로 흘러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 일견 궤변처럼 들리지만 본인은 사뭇 진지하다.

통기타 가수 1세대인 그는 '바보처럼 살았군요'이후 20년간을 노래와 담을 쌓고 살아왔다. 대신 그는 명상의 세계에 심취해 들어갔다. 이런 그가 왜 갑자기 노래를 다시 시작했을까.

그는 1년 반 전 '사랑의 문화 봉사단' 일원으로 지방에 가 '대타'로 노래를 부르다 벼락을 맞은 듯한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노래 한곡이 수십번의 명상 강의보다 더 강렬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후 김씨는 미친 듯이 작곡에만 매달렸다. 'Everybody-항문을 조입시다'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 노래가 음반으로 탄생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우선 레코드 업체들이 난색을 표했다. "나이드신 분이 그냥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는 면박과 함께 네군데 음반사에서 퇴짜를 맞았다.

음반이 나온 현재도 상황은 만만치 않다. 방송사들은 "가사가 너무 직설적이다"는 이유로 심의만 통과시킨 채, 방송 일정을 아직 잡지 않고 있다.

"이 김도향이가 돈을 벌기 위해 이 짓을 한다고 말할 때가 가장 안타깝습니다. 저, 먹고 살 만큼 번 사람입니다."

실제 그의 태교음반은 1백만장이 넘게 팔렸다. 스타가수들에게도 흔치 않은 판매기록이다. 그가 작곡한 10여장의 명상 음반도 불황 없이 지금까지 꾸준히 팔리고 있다. 또 1970년대 '맛동산'부터 최근의 '사랑해요 LG'에 이르기까지 그가 만든 CF음악만도 벌써 5천여곡에 이른다.

스타 가수에서 명상가로, 그리고 다시 가수로 돌아온 김씨. "그동안 명상을 통해 느낀 삶의 지혜를 나누고 싶다"며 태극권을 응용해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안무를 추는 그에게서 도인의 풍모가 흘러나왔다.

이상복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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