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총재 "특검 상설화 바람직하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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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당총재직 분리'를 제시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다.

당 내외를 모두 의식한 카드다. 우선 민주당 쇄신안에 맞서 정당 민주화 의지를 과시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동시에 당내 비주류에 명분을 뺏기지 않겠다는 판단도 한 것 같다.

그러나 李총재는 회견에서 비주류가 요구한 '대선 전 총재.후보 분리'는 거부했다. 국민참여 경선제와 집단지도체제 도입도 반대했다. 대신 그는 "정권교체를 위한 효율적 당운영"을 강조했다.

물론 비주류는 李총재의 카드에 불만이다. 이부영(李富榮)부총재.김덕룡(金德龍)의원은 "제왕적 총재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비주류 달래기는 계속 李총재의 과제로 남게됐다.

李총재는 잇따른 권력형 비리에 대해 "특검제만이 해결방법"이라며 여권을 압박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밝힌 특별검찰청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李총재의 측근은 "현 정권에서 발생한 권력형 비리는 현 정권이 처리하라는 뜻에서 한시적 특검제를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李총재는 연두기자회견의 골격을 '화합과 희망'으로 잡았다. 그래서 金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판은 삼가는 모습이었다. 대신 '미래'와 '대안(代案)'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회견장 분위기에도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밝은 조명 속에 젊은 당직자를 중심으로 한 배석자들이 반원형으로 앉았다. '아무리 산이 높아도 강이 넓어도 계곡이 깊어도 당신에게 가는 나를 막을 순 없다'는 내용의 팝송(제아무리 산이 높아봐야)이 흘러나오게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과 관계가 개선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분과의 인연으로 감사원장.총리 등을 지냈고, 정치인이 됐다.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관계를 값지게 지켜 나가고자 한다. 정치적 시각에서 보지 말아달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와는.

"金총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전혀 앙금이나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지난해 만나 정치공조를 하기로 한 뒤와 같은 심정과 자세로 있다.앞으로도 공감하는 문제에 대해 공조할 생각을 갖고 있다."

-특별검사제를 상설화하자는 주장까진 펴지 않았다.

"우린 검찰이 제대로 서서 헌법과 법이 정한 권한을 행사하길 바란다. 그렇지 못해 특검제를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특검을 상설화해 옥상옥(屋上屋)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근혜 의원이 라이벌로 등장했는데.

"우리 朴부총재가 경선에 나와 아름다운 경선의 모양을 갖춘 것에 대해 기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밝고 명랑한 경선이 되길 바라고 朴부총재도 같은 뜻이리라 믿는다."

-연내에 4년 중임제로 개헌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월드컵.아시안게임.양대선거.보궐선거 등 올해 큰 일이 얼마나 많은가.민생.경제 등 국민이 바라는 과제도 산적해 있다. 지금부터 (헌법)몇개 조항에 매달리자는 것인가. 동의할 수 없다."

-대통령이 되면 당적을 버릴 생각은 있나.

"그럴 생각 없다. 대통령과 여당 사이에 공조.협조관계가 이뤄져야 한다."

-金대통령과 회담을 통해 정쟁중단.깨끗한 선거 등을 약속할 계획은 없나.

"정말로 현 정치상황을 변화시키고,돈 안들고 깨끗한 선거의 틀을 잡을 수 있다면 언제든 만날 의향있다. 그러나 모양만을 위한 것이어선 안된다."

-최근 두 아들이 선거 때까지 외국에 머물 것이란 일부 보도가 나왔다.

"본인들이 정치와 무관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고, 원하는 대로 할 것이다.작은 아이가 유학간다고 나왔는데 전혀 사실 아니다. 국내에 있지 않기를 바라는 측에서 만든 게 아닌가 싶다.가족이 정치에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없을 것이고,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다."

최상연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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