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묻는다] 2. 실상사 도법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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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리산 실상사(實相寺)주지 도법(道法)스님은 실천적 언행으로 절 집 안팎에서 매우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다.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사에 있으면서 절 집에 분규가 생길 때마다 홀연히 나타나 그 불길을 잠재웠다.

요즘엔 환경문제에 열심이다. 귀농학교,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 지리산살리기 국민운동 등은 그가 꿈꾸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구체화시키는 실체들이다.

인드라망은 『화엄경』 속 제석천 궁전에 나오는 구슬그물. 촘촘히 연결된 구슬들은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 등 우주의 삼라만상을 서로 투영한다. 그 유기적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아 공존.협동.균형이라는 우주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주장이다.

실상사로 가는 길은 고즈넉했다. 겨울의 중반을 넘어가는 그 길의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시골집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제 자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우선 공양부터 하시라는 소리에 식당으로 들어가니 냉면그릇만한 대접 하나만 주고 딱 먹을 만큼만 골라 담으란다. 자리에 앉으니 벽에 걸린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보리를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공양게송)

약이라-. 매일 아무 생각없이 배고프지 않아도 때 되면 먹어오다가, 글을 읽고 숟갈을 뜨니 뭔가 색달랐다.

-왜 음식에 욕심이 생깁니까.

"음식뿐 아니라 좋은 옷, 큰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 대한 철학과 건전한 가치의식이 빈곤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채우지 않고서는 영원히 욕망의 노예가 될 뿐입니다."

-어떻게 채울 수 있죠.

"알맞게 갖고, 골고루 나누고, 더불어 함께 살면 그게 채워집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더 많이, 그것도 나 혼자 갖고 싶어 했지요. 그래서는 결코 채워질 수 없습니다."

-'알맞게'라는 말이 어렵습니다.

"욕망에는 속성이 있습니다. 절대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이죠. 욕망을 좇다보면 순간적 기쁨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결국 삶을 황폐화시키고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좌절을 줍니다. 자신에게 알맞다는 뜻은 욕망을 버린다는 겁니다."

-욕심이라는 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몸집이 큰 사람은 큰 옷을 입고, 작은 사람은 작은 옷을 입는 것입니다. 자기 몸의 크기는 자기가 깨닫고 판단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죠."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요즘 인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데, 인문학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일생을 보낼 수 있는 사회 아닙니까. 고달프고 힘든 자기 성찰이 없는 한 삶의 질은 절대로 좋아질 수 없지요."

오후 예불에 참가해야 한다며 스님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스님의 방을 찬찬히 둘러봤다. 두 평 남짓한 방에는 가사장삼 두벌이 대나무 벽걸이에 걸려 있었고 키가 50㎝ 정도되는 작은 냉장고, 두서너가지 차(茶)가 담긴 통과 찻잔, 그리고 물 끓이는 전기포트가 전부였다. 스님에게 이번에는 대안학교와 귀농운동의 성과에 대해 물었다.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난리입니다. 대안학교에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연과 친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도시 아이들은 흙이나 풀벌레 등에 불안감을 갖고 있는데 우선 그것부터 없애도록 하고 있죠. 그러다보면 산만했던 아이들이 침착해지고 자연과 사물을 보는 눈이 넓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교육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합니다. 콩나물 교실을 없앤다고 하는데, 한반이 10명으로 준다 해도 서로 경쟁하는 것만 가르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죠."

-농촌으로 돌아가자는 게 한때 유행이었는데요.

"비인간.반생명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도시생활 골치 아프니까 쉬러 간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경쟁과 대립에서 공존과 융화의 철학을 실천하자는 것이 귀농운동의 본질입니다."

-도시인들이 환경운동을 실천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한순간의 상쾌함을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이 낭비되고 세제가 강물을 어느 정도로 오염시키는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꼭 필요한 것만 소비한다는 철학이 필요합니다."

스님은 세상 모든 것들은 상호의존적이라는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것이다. 스님은 우리 모두가 각자 마음속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묻고 양심의 대답을 한번 들어보자고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훨씬 나아질 것이라며.

남원=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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