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 잘 못해 정부 피해 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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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마저 검찰의 무능을 정면으로 비판, 질책하고 나선 것이다. 金대통령의 검찰 비판은 검찰과 정부.대통령을 한 몸으로 여겨오던 국민으로서는 다소 엉뚱하고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그동안 정치권력의 편에 서서 온갖 수모를 받고 만신창이가 된 검찰 입장에서는 더욱 민망하고 당황스럽겠지만 한편으로는 수긍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金대통령이 "이 정부 출범과 함께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강조했으나 그 목적이 달성됐다고 할 수 없어 참으로 유감이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힌 대목은 적절한 질책으로,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검찰이 잘 해주지 못해 정부가 큰 피해를 본 측면이 있다"고 말한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얼핏 정부의 실정(失政)을 검찰 탓으로 돌린다는 오해를 부를 소지도 있다.

대통령과 정부, 검찰은 동일 선상(線上)에 위치한 공동운명체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정부, 정부와 검찰이 따로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金대통령의 질책에는 검찰이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대통령은 눈치보지 말고 잘 수사하라고 했는데 검찰이 잘 못해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 위상 추락이나 검찰 잘못에 대한 책임의 상당부분은 대통령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사의 인사권을 가진 데다 청와대비서실에 검찰 고위 간부 출신 인사를 참모로 기용, 수시로 보고받는 체제를 유지하며 사실상 검찰을 지휘.감독토록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와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검찰을 탓하는 것은 누워 침뱉기가 될 수도 있고 대통령의 상황 판단이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정부 출범 후의 검찰 주변 정황을 보면 대통령 책임 불가피론은 더욱 명료해진다. 우선 검찰 간부 인사 때마다 지역 편중 시비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검찰 요직은 특정지역이 도맡다시피했기 때문이다.

또 전례없이 대통령이 중용한 검찰 인사들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눈여겨 봐야 한다. 신승남 검찰총장과 김태정.안동수 법무부 장관의 도중 하차, 신광옥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박주선 전 대통령법무비서관의 구속 파동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한마디로 검찰의 난맥상은 인사가 잘못됐기 때문이고 그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다.

위기는 곧 기회다. 새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이같은 질책을 홀로서기의 발판으로 삼아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각오로 검찰 조직을 새롭게 창출해야 한다. 더 이상 정치권력에 기댈 것도, 눈치볼 일도 없다.

특히 인사철마다 횡행하는 정치권 줄대기가 바로 검찰을 망친다는 것을 검사들은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정치검사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검찰 풍토를 바꿔야 한다. 이제 검찰권 독립, 정치적 중립은 검찰 하기 나름이다. 신임 검찰총장 취임에 따른 검찰 간부 후속 인사가 그 시금석이라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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