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집단적 자위권’ 논란 다시 불붙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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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의 제1 야당인 자민당이 일본 정부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제언하기로 했다고 NHK가 31일 보도했다. 실효성이 있는 미·일 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국회 동의를 조건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자는 주장이다.

일본 헌법은 자국에 대한 공격을 격퇴하는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적의 공격을 받는 동맹 국가를 돕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인정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천안함 침몰 등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최근 일본에선 기존 헌법의 자위권 조항을 확대 해석하면 집단적 자위권 발동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어떻게=자민당 제언의 핵심은 동맹국인 미국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탄도미사일을 일본이 먼저 요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하면 미국 본토도 북한의 위협에 직접 노출된다. 일본은 지난해 4월 북한이 인공위성을 실은 로켓이라고 주장하며 미사일을 발사해 북한 무수단리에서 3200㎞ 떨어진 태평양까지 날려보내자 크게 당황했다. 북한이 개발 중인 대포동 2호는 유효사거리 6400~1만5000㎞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와이는 물론 알래스카와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서부 연안 대륙까지 타격할 수 있는 거리다.

일본은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 기술적 제약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현재 개발 중인 대포동 2호를 발사하면 자위대의 이지스함에서 요격미사일을 발사해 북한의 미사일을 격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지스함은 미국과 공동 개발한 해상 배치형 요격미사일 SM-3를 탑재하고 있다. 미·일 양국은 이지스함에서 발사한 SM-3가 가상의 탄도미사일을 격추시키는 훈련을 2007년부터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

◆도입 설득력 갈수록 높아져=자민당이 집단적 자위권을 현안으로 들고 나온 것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가 올 연말까지 마련할 계획인 ‘방위대강’ 개정안과 맞물려 있다. 안보 환경 변화에 따라 10년에 한 번꼴로 방위의 기본 방침을 손질하는 방위대강 개정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자 자민당이 집단적 자위권 허용을 적극 외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민주당이 집권 8개월째에 이르렀는데도 안전보장과 국토 방위에 관해 명확한 정책을 공표하지 않아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이 같은 제언을 했다고 NHK가 전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두드러졌던 자민당 출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시절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단적 자위권은 외부 공격을 방어하기만 하는 개별 자위권만 인정한 평화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란 때문에 큰 진전은 없었다. 미국과의 대등한 외교를 주장하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다.

자민당이 집단적 자위권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다음달 1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층의 표를 겨냥한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이 갈수록 가시화하면서 미·일 동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미국이 위협을 받을 때는 일본이 함께 방어해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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