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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Champions -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 ⑥ DSR제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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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세계 챔피언이 된다는 것, DSR제강 홍하종(48) 대표에겐 무리한 욕심이 아니었다. 회사를 키우기 위해 세워둔 ‘합리적’인 목표다.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는 이 회사의 수출국은 100여 곳, 매출액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이른다. 미국의 비중이 35%, 유럽이 20% 정도다. 국내 2위 업체지만 북미 시장에서는 1위다. 미국에는 매달 1500∼2000t(250만 달러)의 제품을 수출한다. 수출 비중이 큰 데다 시장을 다변화한 덕에 세계 금융위기 속에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환율 효과도 봤다. 지난해가 그랬다. 생산능력 대비 60%만 가동해 매출은 줄었지만 오히려 이익이 났다.

세계 100여 곳에 수출하고 있는 DSR제강은 2015년 매출 목표를 지난해의 4배 이상인 1조원으로 잡았다. 내년부터 특수 와이어로프인 극태물로프의 생산에 기대를 걸고 있는 까닭이다. 전남 순천의 DSR제강 2공장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와이어로프는 조선이나 어업, 유전개발, 부두 크레인 등에 사용되는 산업자재다. ‘밀고 당기고 지지해 주는’ 작업이라면 어디에서나 사용한다. 항구에 정박한 배를 묶어 놓을 때나 컨테이너 터미널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에도 쓰인다. 섬유로프와 STS 로프를 생산하는 자회사 DSR은 합성로프 부문의 세계 1위다.

지금은 와이어로프 생산에서 한국의 비중이 가장 크지만 DSR제강이 이 업종에 뛰어든 1971년(당시는 천기제강)에는 유럽과 미국이 주요 생산국이었다. 이후 일본과 한국으로 생산기지가 이동하며 80년대 들어서 세계 시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저가제품 위주로 물량 공세에 치중했다.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졌다. 레드오션에선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홍 대표는 “기존 시장에 머물러서는 성장이 한계에 직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00년대 이후 와이어쇼 등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와이어로프와 섬유로프는 ‘보수적’인 상품이다. 가격이 조금 싸다고 납품 업체를 쉽게 바꾸진 않는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물체의 이동이나 지지 등에 사용되는 제품에서 비롯한 특성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역시 기술력이다. DSR제강은 차근차근 기술력을 쌓아갔다. 97년에는 국내 최초로 로프 길이를 측정하는 장치(마크 로프)를 개발해 특허를 따냈다. 98년에는 기술연구소를 세웠다. 세계 각국의 선급협회 공장 승인도 확보했다. 선급협회는 선박검사와 선박 관련 제품 품질 인증 등을 담당하는 단체다. 나라마다 요구 사항이 조금씩 달라 이를 충족시키는 데도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자회사인 DSR은 2000년 초강력 특수섬유로 제작한 특수 섬유 로프인 수퍼맥스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수퍼 섬유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DSM사의 아시아 독점 공급권을 확보하면서다. 수퍼맥스는 똑같은 굵기의 와이어로프와 강도는 동일하지만 무게는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무게가 가벼워 다루기 쉬운 까닭에 운반하거나 설치할 때 산업재해를 줄일 수도 있다.

문제는 역시 보수성이었다. 잘 만들었다고 잘 팔리는 제품이 아니었다. 국산화에 성공한 뒤 미국과 유럽 제품을 주로 사용하던 국내 조선소와 해운사를 찾아가 설명도 하고, 갖가지 시연도 해 봤다. 하지만 제품 알리기도 만만치 않았다. 고가의 기존 시장을 뚫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는 바람을 타고 왔다. 2003년 태풍 ‘매미’가 거제도 조선소를 강타했을 때였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액화천연가스(LNG)선 1척이 좌초하고 3척이 표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반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기록된 ‘매미’가 남해안을 뒤흔들었지만 몇 척의 배는 안전했다. 기존의 와이어로프 대신 DSR의 수퍼맥스로 묶어둔 배였다.

최민환 재무이사는 “다른 와이어로프로 묶어둔 배들은 떨어져 나갔지만, 수퍼맥스로 정박시킨 배는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며 “제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DSR제강은 타워크레인 로프 분야에서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 파나마 운하 터미널이 2005년 납품 등록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와이어로프 내구성 테스트에서 6개 회사 중 마지막까지 남은 2개에 포함된 것이다. 중국의 주요 컨테이너 터미널도 품질을 인정했다. 중국 터미널의 인증을 받은 업체는 전 세계 5개에 불과하다. 홍 대표는 “상하이와 선전·칭다오 등 주요 항구에서 주로 우리 제품을 쓰고 있다”며 “터미널 협회의 평가에서 2003년과 2004년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기술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다품종 생산력’이다. 같은 로프라도 조선이나 운송, 원유개발 등 용처가 다양해 고객의 요구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는 DSR제강과 섬유로프 및 STS 로프를 생산하는 DSR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가격대별로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는 전략도 진행 중이다. 2006년 설립한 중국 칭다오 공장은 저가 상품 생산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의 순천·광양 공장에서는 타워크레인용 와이어로프와 수퍼맥스 등 특수 고가제품을 생산한다. 홍 대표는 “한국에서 저가제품까지 생산할 때는 원가를 맞추느라 허덕였지만 중국·한국으로 생산을 이원화하면서 수익구조가 나아졌다”고 말했다.

이원화 전략은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한 것이다. 홍 대표는 저가시장과 고가시장을 모두 선점해 규모와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이다.

“일본의 유명한 로프 제조업체가 저가 제품을 기피해 규모를 줄이며 고가 제품에 주력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회사 규모가 줄면서 사세도 약해지더군요. 기존에 우위를 점했던 저가 시장을 지키면서 고가 제품 시장을 치고 들어가는 전략으로 합성로프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세계 1위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세계 1위, 말처럼 쉽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조직원들 사이의 공감대 형성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직원 한두 명의 수준만 높아져서는 발전이 없고 혼자 해봐야 무너진다”고 했다. 비전을 공유하고 전략을 투명하게 공개해 전체적인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매달 초 월례조회에서 회사 전략 등을 설명하고 알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순천=하현옥 기자



해상유전 ‘극태물로프’ 등 고부가제품으로 승부수
DSR제강의 미래는

DSR제강의 2015년 매출액 목표는 1조원이다. 올해 3050억원을 거쳐 2010년 5100억원을 달성한 뒤 1조원까지 가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DSR제강(1283억원)과 자회사인 DSR(1113억원)의 매출액을 합친 2396억원의 4배가 넘는다.

DSR제강의 매출액 1조원 시대를 열어줄 새로운 동력은 극태물로프다. 직경이 80㎜가 넘는 두꺼운 특수 와이어로프로 롤 하나의 무게가 150t에 이른다. 일반 제품에 비해 2~3배 가격이 비싼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이를 생산하는 곳은 영국 브라이든과 한국의 고려제강, 인도의 무샤마틴 등 세계에서도 4~5개 업체에 불과하다. DSR제강은 전남 여수 율촌공단에 6만6000㎡ 부지를 확보해 극태물로프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6~7월 완공될 예정이다. 이곳에선 월 3000여t, 연 4만t의 극태물로프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극태물로프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곳은 해상 유전이다. 2007~2008년 유가 상승으로 해상유전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극태물로프 수요도 늘고 있다.

특히 해상유전 개발 시설을 해저에 고정하는 데 반드시 로프가 필요하다. 먼 바다에서의 심해 유전 개발을 위해선 로프 길이도 길고, 해저의 압력에 견디기 위해 로프도 굵어야 한다. 홍하종 대표는 “까다로운 제품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제품이 석권하던 고가제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 와이어로프의 내구성을 높여 고가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도 또 다른 목표다. 특히 컨테이너 터미널에 쓰이는 로프는 이러한 전략이 효과적으로 먹혀들 수 있는 분야다.

“내구성을 높인 제품의 가격이 30% 정도 비싸지만, 로프를 교체하느라 크레인을 하루 세우는 것보다는 비싸더라도 좀 더 오래가는 제품을 쓰는 게 고객 입장에서도 더 나을 수 있다”고 했다. 제품 가격이 비싸도 고객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는 뜻이다.

하현옥 기자



대규모 설비투자로 성장·수익성 확보할 것
전문가가 본 DSR제강

DSR제강은 와이어로프와 경강선재를 주로 생산하는 선재 가공업체다. 내수점유율은 약 15%로 고려제강에 이어 국내 2위다.

2009년 매출에서 45%를 차지한 와이어로프는 이 회사의 주력제품으로 선재제품군에선 최고의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2009년 연간 생산량이 13만t에 불과한 니치마켓(차별화된 틈새시장) 제품이면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일본 제품에 버금가는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수출비중이 60%를 넘고, 수출국만 100여 개국에 달할 정도로 수출에 특화돼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해상물동량 감소, 조선·자동차·건설 수요 부진, 환율 하락 등으로 매출액이 전년 대비 10.3% 줄고 영업이익도 16.8% 감소했다. 하지만 2010년에는 세계 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가면서 해상물동량이 증가하고 자동차·광산·기계의 수요가 늘어나 최대 호황기였던 2008년을 뛰어넘는 판매 실적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소재 조달의 다변화를 통해 수익성 제고를 꾀하는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 그동안 원재료인 와이어로드를 포스코에서 90% 이상 조달했다. 하지만 포스코가 자동차 강판 위주로 생산을 전환함에 따라 최근에는 저가 수입산의 비율을 50%까지 확대했다. 환율 하락에 따른 부담도 소재 수입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최근 발표한 극태물로프에 대한 대규모 투자계획으로 중장기적인 성장성과 수익성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3년까지 2차 투자가 완료되면 자회사인 DSR을 포함한 이 회사의 설비 능력은 18만t으로 80%나 증가하게 된다.

투자비용은 488억원으로 이는 자기자본의 70%에 육박한다.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원재 SK증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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