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눈앞의 이익만 보다간 발을 헛디디기 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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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직장과 고액 연봉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속세를 등진 스님이나 신부님 말씀 같지요? 황금을 돌로 본다는 철학자 얘기 같기도 하고요.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주무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얼마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졸업생들에게 한 축사였지요. 미국은 5월이 졸업시즌이거든요.

버냉키는 말했습니다. “고액연봉을 받아보면 처음엔 흥분되지만 곧 익숙해지고, 비슷한 연봉을 받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 흥분은 금방 시들고 만다”고요. 인간의 욕심은 상대적이라는 얘깁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를 집에 비유했었습니다. “집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주변의 집들이 똑같이 작다면 그것은 거주에 대한 모든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킨다. 만약 작은 집 옆에 큰 집이 솟아오르면 작은 집은 곧 오두막으로 전락한다.” 헨리 루이스 멩켄이라는 미국의 문화비평가는 더욱 신랄하게 정의합니다. “부자란 그의 동서(同壻)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을 가리킨다.”

상대적이란 건 끝이 없다는 얘깁니다. 돈이 가져다주는 행복이란 잠시 머무는 손님일 뿐이라는 거지요. 그것도 아주 변덕스러운 손님입니다. 언제 불행의 사신으로 돌변할지 모릅니다. 과장이라고요? 천만에요. 실제로 “돈 때문에 불행해졌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권 당첨으로 돈벼락 맞은 사람이 아닙니다. 칼 라베더라는 40대의 건실한 오스트리아 기업가 얘깁니다. 그는 이달 초 60여억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화제가 됐었습니다. 살고 있던 집까지 넘기고 단칸 셋방으로 옮겼다지요. 그는 “더 많은 부와 사치가 더 많은 행복을 의미한다고 믿어왔지만 부자로 살면서 (거짓 친절을 베푸는) 배우 같은 사람들만 만났지 진짜 사람 같은 사람은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런 영혼도 없고 감정도 없는 5성급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꼭 돈을 멀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 데 돈이 결정적 요소가 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요. 버냉키의 말도 그겁니다. “고액연봉만을 이유로 직업을 선택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직업을 골라야 할까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해답을 줍니다. 역시 얼마 전 애리조나 주립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로 한 말입니다. 그는 사회에 나서는 초년병들에게 “실체보다는 외형을, 항구적 의미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소중히 여기는 통념을 깨라”고 주문했습니다. “인생의 원동력은 돈이나 명성, 권력이 아니라 보다 값지고 의미 있는 소명의식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 역시 버냉키 것과 마찬가지로 교훈적 수사로 가득한 전형적 축사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보는 황금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타박하고, 똑똑한 사람은 진흙 속에서도 진주를 찾아내는 법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은 똑똑하니까 그저 축사일 뿐이라고 치부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의 정치와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두 사람이 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해보리라 믿습니다.

전 지구적인 경제적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일자리 창출 없는 성장이 이미 보편적 현상이 됐습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는 더욱 어려운 사정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일수록 눈앞의 이익만 좇아서는 발을 헛디딜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처럼 거품이 가득할 때는 넘어져도 다치지 않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한걸음 한걸음을 확실히 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부단한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적성과 자질, 능력을 냉철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가장 잘 표현하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합니다. 당장은 성에 안 차는 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 될는지는 여러분이 하기 나름입니다. 구태의연한 인습을 깨고 정열을 불태운다면 여러분이 그 일의 주역이 됐을 때 잠시 미뤄뒀던 돈도 눈덩이가 돼 굴러들어올지 모릅니다. 물론 그런다고 행복이 꼭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노벨상을 탄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자신의 불행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보수가 매우 좋은 일자리를 갖고 있다. 99%의 인류와 비교해도 불만스러운 게 없다. 하지만 나의 정서적 전거 그룹은 내 세대의 성공적인 경제학자들로 이뤄져 있고 나는 그 소수 안에 들어 있지 않다.”

욕심은 상대적이고 끝이 없다고 했지요. 그래도 크루그먼의 불행은 멋지지 않나요? 끊임없는 자기성장의 원동력이 될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자, 지금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이훈범 중앙일보 j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