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듣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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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듣는 능력은 언제나 중요하다.

남보다 먼저, 정확히, 적시에 의중을 찔러 득의의 결과를 얻기 위해선 무엇보다 많이, 제대로 듣는 게 중요하다.

하다 못해 토플(TOEFL)이나 토익(TOEIC)시험에서도 리스닝(listening.듣기)은 고득점의 성패를 가름한다.

이 때문에 기업이나 국가, 개인 할 것 없이 듣는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한다.

신입생에게는 항상 경청(傾聽)의 미덕이 강조된다. 정보기관은 감청능력이 국가첩보 수준의 척도라고 말한다. 정치인들도 민성(民聲)에 귀 기울인다며 여론의 동향을 살피고 행정가들도 각종 제도를 마련해 민심을 들으려 한다.

그렇지만 듣는 능력이 잘못 풀리면 득이 되기보다 해가 된다. 도.감청이 발각되면 인권침해 시비를 부르고 이를 행한 당사자들이 화를 입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도청은 말 그대로 도둑질이다. 하지만 이것도 국가 첩보전이 될 때는 잘 할수록 칭찬을 받는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 중인 미국은 각종 첨단장비를 활용해 도.감청을 감행한다.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각종 첩보위성을 계속해 쏘아올리고 예산을 줄이지 않는 것을 보면 효과가 큰 모양이다.

지난해 말 동중국해에서 발생한 괴선박 사건 당시 일본은 자신들의 감청 능력을 뽐냈다. 북한 조선노동당의 주파수마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듯한 정보들을 흘려 국가 차원의 감청 능력에서 일본이 동북아 최고임을 과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듣는 능력은 국력의 척도가 된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듣는 기술의 발전은 비약적이다. 인공위성.레이저.컴퓨터 장비를 복합적으로 활용할 경우 목표가 설정만 된다면 감청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이런 기술시대에 9.11테러 사건이 발생해 도청이나 감청의 기술적 효용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반면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옛 성현들이 말씀하신 제대로 듣는 능력이 아닌 듣기의 효용성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듣는 것을 의미하는 한자어 청(聽)에는 듣는 기관인 귀(耳)와 그 내용을 좋게 실천하라는 뜻으로 덕(德)의 기본자가 들어 있다. 단순히 듣지만 말고 들은 바를 바르게 행하라는 뜻이다.올해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있다.

모두들 민성과 여론을 제대로 듣고 행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출사표를 던진다. 이들의 말을 제대로 듣고 들은 바를 표(票)로 심판하는 몫은 우리들의 것이다. 새해엔 우리 모두 듣는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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