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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국가기밀 '전화번호책' 사본 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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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321-4987, 옥류관 321-1461. 로동신문 남조선부 322-2728.

4만여개의 전화번호가 수록된 북한의 '전화번호책'사본을 입수했다. 표지에 천리마 동상과 안테나, 버튼식 자동전화 그림이 인쇄돼 있고 '전화번호책'이라고 쓰여 있다. 흥미로운 것은 왼쪽 상단에'비밀'이라는 글씨가 있어 이 전화번호부가 북에서는 기밀로 분류돼 있음을 보여준다.


北 '전화번호책'넘기며 보기

자료를 제공한 북한 학자는 북의 전화번호부는 한 종류뿐이며 "행정조직 등이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에 국가 기밀사항으로 외부 유출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A4용지 380여쪽 분량으로 국가안전보위부 등 국가 기밀에 직결되는 기관은 없거나 일부만 있다. 행정조직은 거의 망라돼 있다. 노동당 등 정당과 행정부처, 언론사, 기업체, 공장 등 주요 기관의 전화번호가 평양을 비롯해 12개 도시별로 실려 있다.

전화번호부를 들여다 보면 각 기관의 조직이 상세히 나타난다. 노동신문에는 남조선부가 있으며, 북한의 유일한 국영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에는'참고통신 편집국'이 눈길을 끈다. '참고통신'은 외국의 통신이나 신문.방송을 통해 얻은 정보를 담아 당과 각 기관 고위 간부에게 배포하는 정보보고서인 셈이다.

또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을 비롯해 국영식당과 호텔.외화벌이사업소(상점) 등도 수록됐다. 민간부문의 전화번호는 없으며 '집 전화'는 조직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리의 장.차관급인 부장.부부장 집 전화번호만 나와 있다. 또 기업체와 공장의 경우도 지배인(사장).당비서.기사장(공장장) 집에 전화가 있다.

'도시별 방향번호(지역번호)'도 나온다. 평양이 서울과 같은 02며 평성 031, 남포 039, 신의주 061, 해주 045, 사리원 041, 강계 067, 원산 057, 함흥 053, 청진 073, 혜산 079, 개성 049 등이다.

전화번호부 뒤쪽에는 전화와 관련된 각종 신청서 양식이 나오는데 북한 당국의 전화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얼마나 철저한지를 보여준다.

'전화(다른 방에 옮기는)신청서'를 비롯해 '전화(덧놓는)신청서''특수봉사 사용 신청서'등 여섯 가지 양식이 있다.'특수봉사신청서'는 교환을 이용하지 않고 사용하는 자동(시내.시외)전화 등을 신청할 때 쓰는 양식이다.

또 북의 구급의료전화는 131, 소방대통보(화재신고)는 119, 안전부신고(범죄신고)는 110이다. 우리의 범죄신고 전화인 112는 북에서는 기상안내 전화다.

북한에서 기밀로 분류되는 이 전화번호부가 어떻게 외부로 유출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2002년 아사히 신문은'일본 연구자 그룹이 북의 전화번호부를 입수해 외무성과 북한학자 등에게 복사, 제본해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전화번호부는 정확한 발행연도는 알 수 없으나 98년 9월 헌법 개정을 통해 내각(행정부)으로 이름이 바뀐 정무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발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KADO)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는 1997년 현재 약 110만 회선의 유선전화가 보급돼 있다. 100명당 5개 회선꼴이다. 또 대부분 행정용이며 일반 주민은 개인용 전화 설치가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북한으로 직접 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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