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론] 이제는 정당 민주화다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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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당 민주화의 필요성에 대한 구구한 설명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오늘날 한국정치의 병폐가 보스 중심의 사당정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일치된 생각인 만큼 이제 정당을 어떻게 민주화시킬 것인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 유명무실화한 기탁금

정당민주화는 정당 보스들이 틀어쥐고 있던 가장 중요한 정치자원, 즉 공천권과 함께 정치자금의 독점체제를 붕괴시키는 데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간 1980년에는 8억원에 지나지 않던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를 1백40배 가까이 늘려 2001년에는 1천억원이 넘는 돈을 국고에서 보조하고 있다. 국민의 불신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한 정당관료조직을 유지하며 대선 경쟁에만 매달려 온 정당에 이같이 거액의 국가보조가 이뤄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치자금의 독점체제를 개혁하는 일은 더욱 절실하다.

현행 정치자금제도는 기탁금.후원금.국고보조금.당비로 구성돼 있다.이중 기탁금제도는 97년 지정기탁금제도의 폐지 이후 사실상 유명무실화했다.

당비제도 역시 각 당의 수입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극히 낮으며, 그나마 당직자들이 내는 특별당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공식적 정치자금의 대부분은 국고보조와 후원회제도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이 소수에 독과점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고보조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이 전체 국고보조 중 95% 가량을 차지하는 정치자금의 독과점 현상은 더욱 우려할 일이다.후원회제도 또한 정당과 국회의원, 그리고 국회의원 입후보자만이 후원회를 결성할 수 있어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조성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식 정치자금의 수십 내지 수백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정치자금이 불법적으로 조성되고 있어 정치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는 점이다.

각국의 정치자금제도를 비교해 보면,정치자금의 수령.지출이 정당을 중심으로 이뤄질수록 의원들의 자율성이 약화되고 당의 통제력이 강화되고 있다.

정치자금도 특정개인이나 집단에 의존할수록 정당은 정치자금을 지원한 개인이나 집단에 포획당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가 늘어갈수록 당은 관료화되고 국민에 대한 대응성과 책임성이 낮아지고 정치자금이 공개되지 않을수록 정치부패의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 정치자금제도를 어떠한 방식으로 정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이 나온다.

우선 1년에 2백60억원 정도에 달하는 정당에 대한 경상보조를 과감히 철폐하고 그 자금을 당내 경선 보조자금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지금과 같이 관료화해 있는 거대 중앙당 조직을 축소하고 원내정당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당내 경선에 필요한 비용을 음성적으로 조달하는 것을 막아 후보들이 부패의 사슬에 말려들게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아울러 그 지원방식도 바뀌어야 한다.1천1백억원의 선거자금 국고보조는 지금과 같이 정당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 개인에게 제공돼야 한다.

이는 후보들이 당으로부터 자율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결국 정당이 공천과 선거자금 때문에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리는 비빔밥 정당을 벗어나 정책적 색깔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정책정당으로 거듭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국고보조금 후보에 줘야

후보자 개인에 대한 선거자금의 지원은 1인당 10만원 이하 소액의 정치자금을 일정 수 이상 모금한 후보자들에게 그 모금한 액수에 비례하여 국고보조를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주권자가 될 수 없는 법인의 정치기부를 금지해야 한다.이는 소액다수주의의 정착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액다수주의가 확고히 자리잡아야만 한국정치가 정경유착의 늪에서 벗어나 민의에 부응하는 정치를 펴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정치자금 투명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공식적 정치자금의 조성과 지출을 일소하기 위해 정치자금의 출납은 선관위에 신고하고 일반공개되는 계좌로 일원화해야 하며, 그 이외의 자금 수수와 지출은 모두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한다.

이젠 돈 먹는 하마로 알려진 대중동원정치는 한계에 이르렀다.

그런 만큼 후보와 유권자간의 정치적 의사소통은 대중매체를 통해 이뤄지도록 공영방송의 대폭적인 시간할애가 있어야 한다.

金玟甸(경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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