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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비양도 올해 1천살 맞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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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섬 속의 섬' 제주도 북제주군 비양도-. 그 섬이 올해 1천살이 됐다. 제주에서도 뒤늦은 화산 폭발로 탄생한 그 섬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새해 희망과 꿈이 또다른 새천년을 열어가고 있다.

#.천년 역사에 새 희망이!

"올해는 섬사람도 좀 살 맛 나게 해줍서게(해주세요). 좋은 일만 이서시믄(있었으면)좋을 텐디(좋겠는데)…."

비양도 사람들은 모두가 남자는 어부, 여자는 해녀라는 특성 때문인지 똘똘 뭉친다.

지난해 12월26일 오전 전체 1백11명인 섬주민 가운데 대다수는 제주본섬으로 빠져 나왔다. 비양도에서 바로 남쪽으로 보이는 제주도 이웃마을 한림리 경조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비양도에서 살았던 옛 이웃 김우남(61)씨가 장성한 딸을 그곳에서 결혼시킨다는 말에 먼 바다로 일을 떠난 사람들을 빼고 주민 50여명이 배를 몰고 '뭍아닌 뭍'으로 나왔다.

"아이구! 가 봐삽쥬(보아야죠). 어릴 때부터 본 아이들인디(아이들인데)…."

그게 이 섬 사람들의 공동체성이다. 섬 1천년 얘기가 나오자 이 곳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고작 그 나이밖에 안되수과(안됐어요)? 읍사무소에서 말해 듣기는 들었는데…. 몇 만년은 된 줄 알아수다(알았습니다)."

하지만 '1천년'의 기대는 이 섬 비양분교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용사'가 꿈이라는 비양분교 4년 김민선(10)양은 자랑스러운 듯 "그러면 우리 섬에 친구들이 더 오게 되는가요?"라고 되묻는다.

비양보건진료지소가 신축되면서 지난 3월 제주본섬에서 건너 온 친구 부청아(10)와 든 정이 너무 돈독하기 때문이다. 기껏 친구라곤 5명뿐인 비양분교라서 더 그렇다.

"이왕이면 도회지 친구들처럼 학교에서 축구.배구팀을 만들어 함께 어울려 놀았으면 좋겠다"며 민선이는 차곡차곡 꿈을 키워가고 있다.

28년간 이장생활을 했다는 윤만선(尹萬先.67)노인회장의 입심은 대단하다.1백30여년전 궁핍한 생활로 '돈이나 벌어보겠다'며 배를 탄 할아버지의 비양도 정착이 윤회장의 가문내력.윤노인은 태어나 줄곧 비양도에 산, 말 그대로 토박이다. 게다가 그의 어머니 이태석(李泰錫.90)씨는 이 마을의 최고령자니 그만큼 윤노인의 '마을자랑'은 힘을 얻는다. 그가 꺼내는 얘기 한토막.

섬 서쪽 해안에 있는 '애기 업은 돌'이야기다.

"1백20년 전 북제주군 구좌읍 김녕리 해녀들이 여기서 일하다 풍랑을 만나 보름간이나 머물렀답니다. 나중에는 다들 돌아갔는데 아기를 데리고 온 해녀는 떠날 처지가 못돼 남편이 양식을 가져오길 기다렸는데 도통 소식이 없어 그만 망부석이 돼 버렸답니다. 남자는 배타고,여자는 해녀 물질로 사는 섬사람 얘기죠."

그런 망당대해 속 섬 때문인지 윤노인의 아들.딸 5남매는 모두 제주본섬으로 떠난지 오래다. 그러나 섬주변 바다가 갈치.옥돔의 황금어장이라는 말이 나오자 윤노인은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만큼 여름철만 되면 이 섬은 낚시꾼들의 주요방문지로 뜬다.

'물질'에 일가견이 있다는 해녀 이시호(李時好.65)씨가 거든다.

"제주바당(바다)에 전복.소라씨가 말라감젠(말라간다고) 허멍예(하면서요). 돌아보민(돌아보면) 하수다(많수다). 경헌디(그런데) 우리만 잡는 것도 아니고… 여기 저기 해녀들 다 여기 들어왕(들어와서) 잡아도 된덴허난(된다고 하니) 못 살쿠다(살겠습니다)."

해녀 李씨의 불만이다. 이 참에 도나 군에서 비양도 사람들만의 어업권은 보장해달라는 소리. 하지만 한림읍사무소 직원 김근태(金根泰.35)씨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애기 업은 돌'도 따지고 보면 비양도가 제주해녀의 공동조업지 역사에서 나온 거죠. 비양도 주민들이 섬 거주 경력이 조상부터 따져도 2백여년 남짓이고, 출신지도 북제주군 한림읍 여러 마을인데 이제 와서 단독 어업권을 보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섬탄생 1천년을 맞는 올해 북제주군은 비양도의 '천년맞이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군은 아예 '멋진 비양도 가꾸기'란 슬로건을 내걸고 1억3천만원을 쏟아부을 생각이다.기록에 맞춰 섬탄생 1천년이 되는 7월 '천년기념비'를 세우고 기념제도 열 계획이다.

비양도의 상징석인 '애기업은 돌'주변에도 대대적인 자연석 조경사업을 벌일 방침.

각계의 학자가 참여하는 학술심포지엄을 비롯 섬주민과 관광객이 참여하는 축제도 구상하고 있다. 북제주군 관계자는 "섬 탄생 천년을 알리고 아름다운 천혜의 환경도 알려 비양도가 제주도의 새로운 관광 섬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애쓰겠다"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 김영배 비양리 이장 인터뷰

*** 김영배 비양리 이장 인터뷰

"올해는 우리 섬사람 모두 행복허기만(행복하기만) 허믄(하면) 좋으쿠다(좋겠습니다)."

비양도 비양리의 김영배(金永培.48)이장의 바람은 한결같다.

한림항에서 하루 두편의 도항선이 비양도를 오가지만 이 배가 끊겨 비양도를 오기가 어렵게 되면 金이장은 손수 자신의 배를 몰고 나온다.

바쁜 일만 없으면 읍사무소 연락만으로 출동한다.

"배가 없어 비양도에 올 수 없다는 건 안될 말"이라는 것이다.

30여년 배를 탄 어부답게 배를 모는 솜씨도 일품이다.

센 물살을 가르면서도 배가 흔들림없이 요리조리 잘 헤쳐나가도록 뱃길을 훤하게 꿰뚫어보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낚시꾼이든, 관광객이든 섬에서 편하게 쉬어 갈 공간이 없는게 아쉬움"이라고 말한다.

"초등과정 분교 외엔 마땅한 학교가 없어 중학진학때만 되면 아이들이 섬을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게 안타깝다"는 그는 "다시 시작하는 천년에는 지금처럼 기껏 다섯명이 아니라 아이들로 북적대는 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어떤 섬인가

47가구가 사는 59만㎡의 '미니섬'비양도는 최근에야 관심을 끄는 곳이다.

북제주군 한림항에서 3.5㎞ 거리에 있는 비양도 섬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해발 1백14m의 비양봉은 제주도내에서도 특이한 기생화산이다.

정상에 두개의 분화구가 따로 펼쳐진 희귀한 쌍분화구 화산인데다 화산탄등 화산분출물이 섬 곳곳에 널려 있다.

섬 주변에는 천연동굴과 '시스택(Sea-stack)'으로 불리는 용암바위 원형이 잘 보존돼 지질학자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6월에 산이 바다 한 가운데서 솟았다. 산에 구멍이 터지면서 붉은 물을 5일간 내뿜고 그쳤다.10년(1007년)에 서산(瑞山)이 바다 한 가운데서 솟으니…" 라는 『동국여지승람』(권38)기록이 관심 대상.

제주대 고창석(高昌錫.사학)교수 등은 서산(瑞山)이 여러 문헌기록을 종합해 볼 때 지금의 비양도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비양도의 탄생은 올해로 꼭 1천년이 되는 셈이다.

제주도동굴연구소장인 손인석(孫仁錫.화산지질학)박사도 "아직 지질과학적인 암석연대 측정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현장 관측조사로 미뤄볼 때 '한반도에서 가장 최근에 형성된 섬'인 것은 분명하다"는 견해다. '이중분화구 화산'으로 유명한 남제주군 송악산과 같은 생성연대의 산물로 지질적으로 심도깊은 연구가 필요한 섬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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