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너진 외교 바로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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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는 통일국가의 기반조성과 세계화 추세의 수용이라는 양대 외교현안을 갖고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양대 현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려면 우리 외교의 올바른 전략목표 설정과, 이를 뒷받침할 외교 역량의 결집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우리 외교의 전략목표는 방향감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외교진용 구성의 난맥상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비판을 받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변화된 국내외 정세에 탄력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외교부의 전략 부재(不在)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외교는 대북 포위망 구성이라는 체제외교와 권위주의 정권의 방탄 외교에 치중해왔다.

따라서 국익의 수호 및 자국민 보호라는 외교 본연의 업무가 왜곡되기 일쑤였다. 문민정부, 특히 김대중 정부 이후 외교부는 냉전 및 권위주의 시대의 부정적인 두 가지 업무의 유산에서 벗어났음에도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변신하지 못해 대외관계에서 결정적인 허점을 내보였다.

외교부는 미.일.중.러시아와의 4강외교를 강화한다는 전략을 추진했다. 정부는 전통 우방인 미.일과의 관계를 한층 돈독히 하면서 대(對)중국.러시아 외교를 강화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가 중.러와의 관계를 더욱 중시하는 듯한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집토끼도 산토끼도 모두 놓치는 우를 범한 결과가 된 것은 우리 외교의 가장 큰 실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가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 협정과 관련, 러시아 입장을 지지했다가 미국과의 마찰을 야기한 일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전략적 실책에다 외교부가 환경변화에 따른 조직 및 인사 쇄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민의 정부 집권 이후 외교수장 및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1년꼴로 바뀌는 판이니 외교정책의 안정적 추진을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현직 장관은 '의전용'이라는 유엔총회의장까지 겸임하는 형편이어서 산적한 현안을 적기에 처리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적지 않은 공관장들이 1년도 안돼 교체되고, 심지어 모 대사는 지난 4년간 공관장직과 본부 주요직을 각각 두차례나 거치는 인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지난해 12월에 이뤄진 대사내정 인사에선 일본대사에 일본과 별 연고가 없는 정치인을 지명해 '1년짜리 대사'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중국엔 외교부장관 출신을 대사로 보내면서 미국엔 공천에서 탈락한 전직 국회의원을 대사로 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가 잘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 할 수 있다.

외교부는 조직을 쇄신했다고 하나 재외 공관 및 본부 기능의 과감한 개편과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중국.일본은 물론 여타 아시아 국가와 오세아니아를 관장하는 아시아.태평양국은 분리.조정해야 하며, 외교안보연구원도 축소하는 등 업무의 양과 기능에 따라 인력을 재조정해 보다 경쟁력있는 조직체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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