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영화풍경] '귀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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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프로이트에 따르면 엄마를 잃어버린 아들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이디푸스다. 평생 없는 엄마만 사랑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코미디 '귀여워'(감독 김수현)의 웃음 뒤에선 '엄마 부재'의 상처를 엿볼 수 잇다. 세 명의 엄마 없는 아들과 한 아버지, 이렇게 네 남자로 구성된 집에 근본을 알 수 없는 처녀 순이(예지원)가 들어와 가족의 인생을 바꿔놓는다(이 구조는 파졸리니의 '테오레마'와 아주 닮았다).

세 아들은 엄마를 대신하는 자기만의 여성 이미지를 갖고 있다. 큰아들(김석훈)에게 여자/엄마는 천사다. 그에게는 순이가 천사처럼 보이고, 그녀와의 순결한 첫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첫째는 사랑을 아버지에게 빼앗기는 오이디푸스적 상처를 받는다. 순이와 아버지가 결혼하는 날, 첫째는 다른 여자와 자기만의 결혼식을 따로 올린다. 창녀처럼 보이는 어떤 처녀에게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힌 뒤 첫날밤을 치르고, 순이 이후 처음으로 오토바이 뒷자리에 그 처녀를 태우고 밤거리를 질주한다. 아마 다음에는 또 다른 여성이 타고 있을 것이다. 순이와 만난 후 가장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보여준 인물이 바로 첫째다. 그는 이제 자발적으로 엄마 품을 떠났다.

이 집에 순이를 데리고 온 사람은 둘째(선우)다. 둘째의 여성/엄마는 창녀다. 만지고 싶을 때 가구처럼 옆에 있으면 되고, 효용이 떨어지면 내다버리면 된다. 그에게 여자는 물건과 같다. 남녀 사이를 사고파는 관계와 혼동하는 둘째는 어찌 보면 가장 불쌍한 남자. 그러나 창녀라고 알고 있던 순이가 다른 역할을 해낼 때, 둘째는 처음으로 사람 관계의 진정성에 대해 고민한다.

셋째(정재영)에게 여성은 모두 엄마다. 지독한 오이디푸스인 셈. 순이를 보자마자 모성애를 느낀다. 더 나아가 '엄니'라고 생각한다며 엄마 젖을 문 아기처럼 순이의 벗은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유사)모자 관계가 복원됐음을 잘 상징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나마 세 형제 중 가장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되찾은 사람이 셋째다. 그에겐 엄마가 새로 생겼다.

세 아들은 순이의 등장 이후 각자 방식대로 엄마 부재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보기에 따라서 상투적인 내용의 성장영화가 '귀여워'인데, 여기에 독특한 색감과 스타일을 입혀 특별한 영화로 만들어낸 데뷔 감독의 솜씨가 예사가 아니다.

한창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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