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인사기준 정말 실현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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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 1월 초 정부 부처의 대규모 국.과장급 인사 때 지연(地緣).학연(學緣)을 배제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는 무척 원론적이다.

공직사회의 인사철이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고 확인하는 수칙이다. 그런데 임기 마지막 해를 앞둔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발언 시점.배경을 따질수록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런 다짐은 공직인사가 그 반대쪽으로 흘러갔다는 역설적인 반성으로도 들린다.

DJ정권의 실정(失政)논란에는 호남 출신 요직 편중, 동교동계 발탁, 낙하산 기용문제가 있어왔다. 청와대는 과거 정권의 영남 우대 인사 패턴을 바로잡는 과정의 진통이며, 낙하산은 예외적이라고 해명해왔지만 그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편중인사 시비는 지루한 정치쟁점이었고, 민주당 내분, 민심 불만의 소재가 되면서 DJ정권을 괴롭혔다.

무엇보다 '형님.동생'식의 연고주의 인사 폐해가 권력 탈선.게이트 부패 속에 넘쳤다. 진승현 게이트.수지 金 피살 은폐에서 드러나듯 검찰.국정원.경찰에는 사정(司正)기관간 건강한 견제와 상호 감시가 없었다. 끼리끼리의 동지의식과 덮어주기의 정실(情實)담합만이 두드러졌다.

'깨끗한 정부와 인권'이라는 DJ정권의 간판이 더럽혀진 것도 '인사가 만사'라는 평범한 진리에 충실하지 못한 탓이다. 金대통령의 발언이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제라도 金대통령의 지시는 확실하게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정치권과 결별하고 국정 전념을 외친 金대통령의 손과 발이 돼줄 조직은 공직사회뿐이다.

경제 회복.양대 선거.월드컵의 성공은 공직자들이 얼마만큼 책임의식을 갖고 신나게 일하느냐에 달려 있다. 공직사회가 레임덕을 의식하지 않고 정책 추진력을 다지기 위해선 인사의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

복지부동(伏地不動)과 정치권 줄서기의 차단도 그것으로 가능하다.金대통령이 제시한 능력.개혁성.청렴도가 기준이 된 인사작품을 국민은 보고싶어 한다. 그런 기준은 당연히 전면 개각 때도 적용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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