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불씨 '생산에 점화' 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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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년 전인 지난해 이맘 때 통계청은 설비투자가 1999년 11월에 비해 1.1% 감소하고 산업생산 증가율도 10월의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경기가 본격적인 둔화 국면으로 들어섰고 회복 시기를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8일 통계청은 11월 설비투자가 13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고, 만든 뒤 팔리지 않아 공장에 쌓아둔 물건도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고 발표했다. 산업생산도 지난해 11월보다 4.9% 늘었다. 경기 회복의 신호등이 서서히 불을 밝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4분기 성장률이 4%에 육박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하지만 국내 경기가 지난해 11월부터 빠른 속도로 미끄러진 데 대한 반등 효과가 큰 점을 감안하면 아직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일본 등 세계 경기가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 상태여서 더욱 그렇다.

◇ 내수가 끌고 생산이 밀고=올해 국내 경기가 그나마 버틴 것은 내수가 받쳐줬기 때문이다. 11월 산업활동 동향 중 주목을 끄는 것은 생산 부문 쪽으로 불이 옮겨 붙을 조짐을 보였다는 점이다.

10월 초 추석 연휴를 감안하면 10월부터 산업생산이 증가세로 바뀐 데 이어 설비투자도 플러스로 돌아섰다. SK증권 리서치센터 오상훈 팀장은 "설비투자 증가는 지난해 11월 설비투자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따른 반등 요인을 감안해도 2% 이상 증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출용 출하(물량 기준)가 8% 늘어난 것도 좋은 신호다. 다만 지난달 수출 금액이 17% 줄어들어 채산성이 나빠진 게 걸린다.

재고 증가세도 주춤해졌다. 지난달 재고 증가율은 2.3%로 99년 12월 이후 가장 낮다. 재고율도 76.9%로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 전보다 물건이 잘 팔린다는 얘기다.

통계청 김민경 경제통계국장은 "생산은 반도체.화학제품.시멘트가, 투자는 자동차.컴퓨터 쪽에서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내수도 안정적인 모습이다. 특히 건설 수주가 80% 늘었다. 공공 부문의 증가율이 1백81%인데, 이는 정부의 예산집행 효과가 나타났다는 의미다.

◇ 바닥 치고 있지만 본격 회복으로 보기는 일러=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연구위원은 "산업생산 지표들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경기가 바닥을 찍고 본격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바닥을 다지면서 회복을 모색하는 단계로 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수출 출하가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타났지만 아직까지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내수가 경기를 지탱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전종규 연구위원도 "내년 하반기에는 경기가 살아나 4.2%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잠재성장률(5%)을 밑도는 수준이어서 경기 회복이 본격화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경기는 좋아지든 나빠지든 그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빠르므로 경기가 예상보다 빨리 크게 호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씨티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올 4분기 성장률이 3.4~3.5%는 될 것으로 보인다"며 "반도체 등 정보기술(IT)분야도 생산 물량이 늘어나고 있어 가격만 회복되면 경기 회복 속도 또한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 본격 회복은 내년 1분기 이후에=현재의 경기 상태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1월을 포함, 석달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향후 6개월 뒤의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경기선행지수도 7개월째 오름세를 지켰다.

김민경 국장은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6개월 이상 상승세를 유지해야 본격적인 회복 시기를 점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1분기는 돼야 경기 회복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역시 미국 경제의 회복 시점이다. 최근 미국의 재고가 지속적으로 줄고 신규 주문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신호도 있지만 회복 시기는 내년 하반기 이후가 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로 엔화 가치가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송상훈.정철근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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