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판 포레스트 검프’ 재미동포 권이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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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권이주(맨 왼쪽)씨가 동행자들과 함께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시내를 흐르는 미주리강의 다리 위를 달리고 있다.

5120km 거리의 북미대륙 로스앤젤레스(LA)~뉴욕 달리기에 도전하고 있는 뉴욕마라톤클럽 권이주(65) 회장의 이야기가 미국 전역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3월 23일 미국 LA시를 출발한 권씨는 지난 18일 미주리주에서 3200㎞(2000마일) 지점을 지난 데 이어 25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와 인디애나주 경계를 통과하면서 3500㎞(2174.84마일)를 넘어섰다. 전체 구간의 3분의 2를 지난 것이다. 64일 동안 3500km를 주파한 것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평균 54.7㎞를 뛴 결과다.

그는 현지언론으로부터 한국인판 ‘포레스트 검프’(달리기를 잘하는 주인공이 미국 전역을 뛰는 내용이 담긴 1994년 제작 할리우드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로 통한다. 권씨가 2000마일 지점을 넘어선 18일(현지시간) 뉴욕의 대중지 데일리뉴스는 ‘검프, 언덕을 넘다’라는 제목으로 4면 절반을 할애해 그의 도전기를 담았다. 이 신문이 권씨를 소개한 것은 이미 세 번째다. 최종 목적지인 뉴욕이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현지 언론의 관심이 갈수록 많이 쏟아지고 있다. 각 주를 지날 때마다 해당 지역 언론의 취재가 이어졌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본 투 런(Born to Run)』의 작가이자 인기 블로거인 크리스토퍼 맥두걸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권씨를 응원하고 있다. 그는 조만간 권씨와 함께 달릴 예정이다.

권씨는 최근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나도 놀랐다”라고 말했다. 권씨는 18일 미국 건국 초기 서부의 관문으로 통했던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미주리강을 건넜다. 1963년 미주리 강가에 세운 ‘게이트웨이’라는 대형 아치도 관문을 의미한다. 유서 깊은 게이트웨이를 통과할 당시 권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동안 응원해준 수많은 분의 기(氣)가 여기까지 이끌어줬다”고 소감을 전했다.

가장 큰 고비는 1600㎞ 지점을 지날 무렵이었다. 애리조나주에서 뉴멕시코주로 이어진 이 구간은 산악지대였다. 그는 “오르막길만 16㎞가 이어진 곳도 있었다”며 “우박까지 쏟아져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1㎞만 더 버티자며 뛰다 보니 결국 50㎞를 달렸다”라고 회상했다. 산에서 내려오자 이번엔 황야의 모래바람이 앞을 가로막았다. 눈을 파고드는 모래 때문에 땅만 보고 수십㎞를 달리기도 했다. 그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에 일어나 8시간을 달리고 나머지 시간은 식사와 휴식으로 채우고 있다. 한 마디로 고행의 연속이다.

대평원에 들어서면서부턴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지나가던 트럭 운전사나 기차 기관사가 경적을 울려주기도 했다. 가끔 마주치는 경찰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권씨가 계속 달릴 수 있는 데는 부인 권복영(59)씨의 내조도 한몫했다. 부인은 LA에서부터 남편과 동행하며 고칼로리 식사를 챙기고 있다. 중증 당뇨병 환자였던 권씨는 병을 이기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번 도전의 목적이 ‘당뇨병 퇴치’와 ‘세계 평화 및 남북 통일 기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새벽에 나설 땐 허벅지와 무릎·발목이 아파 얼마나 더 뛸 수 있을까 걱정하지만 달리다 보면 괜찮아진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뉴욕 유엔본부까지 완주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후원 및 마라톤 동행 문의는 홈페이지 www.go2marathon.org 참조)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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