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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음식점 아낙네들의 새해 소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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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고향,옛 것이 더욱 그리워지는 세밑이다.조석(朝夕)으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가 입맛이다.맛은 또 분위기에 따라 적지 않게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어머니가 해 주신 것같은 그 맛을 평생동안 지켜온 허름한 음식점의 아낙네들을 만나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옛날 할매순대 집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함양군 안의면 석천리 안의장터 입구 ‘옛날 할매 순대집’-.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연탄화덕에서 순대를 삶는 이순재(67)할머니는 한해를 넘길 때마다 보고 싶은 이들이 많다.매월 5,10일이면 찾아오던 장꾼들 가운데 올들어 모습을 감춘 소장수 金씨 등 20여 명이 그들이다.

산골 장터까지 불어닥친 경제 한파는 5일장 장꾼 숫자를 줄게 해 요즘은 수십년전 수준인 50여 명 밖에 되지 않는다.30년째 순대장사를 하는 李할머니는 지리산 자락서 가장 큰 장터였던 이곳을 거쳐간 장꾼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시누이 ·여동생 등 식구 전원이 나서야 할 정도로 손님이 붐빌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혼자서도 거뜬히 손님을 치러낸다.

스물한살에 시집온 뒤 시어머니로부터 식당을 물려 받았고 이젠 ‘순대 할매’가 되었다.처음엔 백반을 팔았지만 곁들여 내놓던 순대가 이제는 주종이 되고 말았다.

5천원짜리 순대 한접시를 놓고 2시간 이상 앉아 있는 장꾼들의 치다꺼리에도 짜증 한번 내지 않는다.길다란 국자를 들고 다니며 연신 뜨거운 국물을 뚝배기에 부어준다.

15년 전 할아버지가 숨진뒤 혼자서 순대를 팔아 세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다.이중 둘은 결혼까지했다.

할머니의 순대 맛은 장꾼들의 입소문을 통해 대구·마산까지 소문이 났다.어릴 적 친정에서 돼지 내장으로 순대를 만드는 것을 거들면서 자연스레 배운 솜씨 덕이다.

“갱제(경제)인가 뭔가가 나아지고 사라진 장꾼들이 돌아와 순대국도 더 많이 팔리고,둘째 아들도 장가를 보냈으면….” 할머니의 새해 소망이다.

#뚝배기 청국장 집

“날도 이렇게 추운데 끼니들은 안 거르는지….”

광주광역시 산수1동 나무전(廛)거리 뒷편 주택가 청국장집의 이병순(69)할머니-.건강이 좋지 않아 최근 며느리에게 가게를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안집에서 발길이 끊긴 단골들을 생각하는 날들이 많다.

“얼굴이 안 보인다 싶어 함께 다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회사를 그만두거나 부도 나 도망갔다고 하더라구.”

이 집에는 간판도 없고 4인용 탁자 3개와 예닐곱명이 들어가는 골방 2개만 갖추고 있다.메뉴도 간단해서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청국장,4 ∼ 9월은 콩물국수 하나뿐이다.그런데도 고향집 어머니 손맛 같다며 이틀이 멀다하고 찾아오는 아들 같은 손님들이 수십명이나 된다.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식사한번 맘놓고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일선에서 물런난뒤 맞는 세밑에 오히려 그런 얼굴들이 그립다고 했다.

이 집 청국장은 우리 콩을 직접 삶아 사흘동안 온돌 방에서 이불을 씌워 띄운 뒤 절구통에 찧어 만든다.밥통을 열고 밥을 마음껏 퍼다 먹어도 상관하지 않는 넉넉한 인정(人情)이 사람들을 꾀게 했다.

며느리 주정숙(44)씨는 “몇달씩 안 보이다가 웃으며 가게로 들어서는 손님들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며 “새해엔 특히 실직했던 이들이 재기해 이곳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억의 국밥

일년이 멀다하고 인테리어를 고치고 업종을 바꾸는 게 대학가 업소들의 특징들이다.그러나 수십년 동안 같은 분위기와 메뉴를 고집하는 식당이 있다.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북대 옛정문 앞 ‘용집’이 그곳이다.

30여년 전 남부시장에서 시작해 20년 전 이 자리로 이사온 뒤 순대국만을 파고 있다.

취업이 되지않아 풀이 죽은 채로 소줏잔을 기울이는 졸업반 학생 손님 두명에게 주인 박용철(57)씨는 넉넉한 덕담을 해준다.

“너무 낙담하지 말어.출발이 좀 늦을 뿐이여,인생은 백미터 달리기가 아니고 마라톤이야”

박씨네 손님의 태반은 교수 ·학생 등 대학식구들이다.그러나 학창시절 추억을 좇아 온 중년 손님도 적지 않다.

“졸업하고도 한참 동안 대학가를 배회하던 친구가 번듯한 직장인이나 사업가가 돼 나타날 때는 정말로 반갑습니다”

그런가 하면 졸업도 하기 전에 좋은 직장을 잡았다고 축하 파티를 했던 친구가 구조조정 당해 혼자서 소줏병을 기울이는 모습도 적지 않다고 귀뜸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아침 ·저녁으로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하던 학생들의 취업 소식이 들리면 마치 자기 자식의 일처럼 기쁘단다.

朴씨는 “임오년 새해엔 졸업생 전원이 취업을 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개운한 멸치국물 국수집

“새해엔 우리나라 경제가 국수발처럼 술술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전북 완주군 봉동읍 농협 앞 ‘할머니 국수집’ 정현자(54)씨의 임오년 소망은 소박하다.올해 “세상살이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푸념하는 손님들이 어느 해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이 식당에는 테이블이 하나도 없다.큰 부뚜막을 앞에 두고 의자 10여개가 놓여 있는 장터 선술집 같은 분위기다.국수를 멸치 국물에 말아 커다란 양푼에 담아 내는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다.어릴 적 고향 마을에서 결혼식 ·환갑 등 잔치가 있을 때 동네사람들과 함께 먹던 잔칫집 국수 바로 그 맛이다.

시어머니(권부녀 ·80)가 1950년대 말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요즘엔 인근 도시민들을 포함해 하루 평균 2백∼3백명,주말과 휴일엔 4백여명이나 몰려 든다.살기가 힘들수록 옛 것을 찾는 게 사람 심리인지 요즘 손님이 많은게 괜히 미안하다고 했다.

정씨는 “배 곯는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불러 한 양푼씩 대접하는게 우리집 전통”이라며 “그렇지만 내년엔 이 전통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해석 ·김상진 ·장대석 기자

*** 전주 현대옥 양옥련씨

*** 전주 현대옥 양옥련씨

‘맛의 고장’전주에서도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인 남부시장.옷 ·건어물 ·채소 가게 등이 줄줄이 늘어선 미로를 따라 ‘현대옥’에 이르는 동안 외지인들은 세번 놀란다.

콩나물국밥 집의 대명사로 통하는 이 식당이 5∼6평 밖에 되지 않아 규모의 옹색함에 처음 놀라게 된다.낡고 누추한 식당에는 시멘트로 만든 부뚜막에 간이 의자만 10여개가 덩그라니 놓여 있을 뿐이다.

두번째는 그렇게 작은 식당이지만 줄지어 늘어선 손님에 다시 한번 놀란다.점심무렵이면 각 의자 뒤로 보통 3∼4명씩 기다리고 있다.국밥을 급하게 먹지 않을 수가 없다.30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예사다.그래도 사람들은 “현대옥 콩나물국밥에 중독됐다”며 꾸역꾸역 몰려든다.

그리고 나서는 국밥의 독특한 맛을 보고 “바로 이맛”이라며 무릎을 치게 된다.전주 콩나물국밥은 뚝배기에 콩나물 ·밥 ·계란 등을 넣고 팔팔 끓여 내오는 것이 대종이다.

그러나 ‘남부시장식’으로 일컬어 지는 이 집 국밥은 끓인 국물에 찬밥을 말은 뒤,미리 삶아 따로 건져 낸 콩나물을 얹어 내 놓는다.시원하면서 담백하고 얼큰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이집 주인인 양옥련(61 ·여)씨는 술을 좋아하는 남편의 술국으로 국밥을 끓이다가 식도락가 ·애주가들이 한번쯤 꼭 들르는 명소를 일궈냈다.30여년 전 남편이 세상을 뜬 뒤 혼자서 국밥집을 해 4남매를 은행원 ·사업가 ·예비 대학교수 등으로 번듯하게 키워냈다.

그녀는 손님들이 “고추가 덜 들어갔다”“너무 맵다”는 등 투정을 부리면 “시덥쟎은 소리하려면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질러 ‘욕쟁이 할머니’로도 불린다.

명절을 빼고는 오전 6시에 문을 여는 대신 오후 1시30분까지만 장사를 한다.전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문을 닫고 싶어도 그러질 못한단다.

연말이면 손님들이 십시일반으로 낸 성금에 자신의 돈을 모아 양로원·고아원 등을 돕는 일도 7년째 하고있다.

양씨는 “올해는 불경기라서 건너 뛰려고 했는데 손님들의 성화에 이웃돕기 성금통을 식탁에 올려놨다”며 활짝 웃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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