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쓴 '혈사경' 첫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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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조선시대 사미승이 자신의 피를 먹물삼아 쓴 것으로 추정되는 '혈사경(血寫經.사진)'이 27일 처음 공개됐다.

지금까지 국내에 남아 있는 혈사경은 중국스님이 쓴 한점(송광사 소장)뿐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쓴 혈사경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인 보광 스님이 주간 '법보신문'에 공개한 이 혈사경은 가로 17㎝, 세로 22㎝ 크기의 70여쪽 분량으로,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과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등이 쓰여 있으며 군데군데 핏방울 자국이 보인다.

또 마지막 장에는 '세을미년시월사미인원분향백배(世乙未年十月沙彌仁元焚香百拜)''혈지근서우금강산건봉사보림암(血指謹書于金剛山乾鳳寺普琳庵)'이라고 돼 있어 건봉사 말사인 보림암의 사미승이 손끝을 베어 그 피로 경전을 옮겨 썼음을 알 수 있다.

혈사경은 "부처님께서 살갗을 벗겨 종이로 삼고 뼈를 쪼개 붓을 삼고 피를 뽑아 먹물을 삼아서 경전 쓰기를 수미산만큼 하였다"는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구절에서 보듯 예부터 구도와 신심의 극치의 상징이었다.

보광 스님은 "일본 유학 시절 알게 된 교토(京都)금각사 부주지인 오카다 고슈 스님이 1970년대 고서점에서 구입한 것을 87년에 기증받았다"며 "오카다 스님은 이 경전이 1715년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1802년부터 1831년까지 건봉사에서 대규모 불사가 있었고 1851년 다시 불사가 이어졌던만큼 1835년에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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