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나만의 십계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구문명의 두 원류(源流)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이 가운데 헤브라이즘, 즉 기독교 사상은 서구인들의 정신적 모체라 할 수 있다.

이를 잘 집약해 간단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십계명이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열가지 계명은 유일신 사상을 강조한 넷째까지를 빼면 3천여년이 지난 지금 비기독교인에게도 그대로 통하는 도덕 지침이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이를 그대로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령 전장의 병사에게 '살인하지 말라'(제6계명)고 주문할 수는 없으며,'도둑질하지 말라'(제8계명)는 가르침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도처에서 파계(破戒)되고 있다. 해서 독일의 시사주간 슈테른지 최근호는 오늘날 독일인이 지켜야 할 '신(新)십계명'을 선정, 발표했다. 독일 각계각층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설문조사해 만든 이 신십계명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아 소개한다.

①모든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라.

②너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부당한 일에 맞서라.

③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④인간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⑤살인하지 말라.

⑥약속을 지켜라.

⑦자연을 보호하고 지켜라.

⑧네 자녀를 사랑하라.

⑨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살지 말라.

⑩신앙의 선택은 자유지만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말라.

독실한 기독교 신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성서의 십계명에 대한 신성모독 차원의 대안개념으로 제시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독일인들이 명심하고 지켜야 할 가치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그래선지 극우파 문제(①②④)나 환경보호(⑦)와 같은 독일의 현안들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끈다.⑨번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의 현대판 버전이며,⑩번은 9.11 사태에 대한 경구(警句)다.

우리 주위에도 무슨 무슨 십계명이 많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선생이 처음 주창했다는 '부부 십계명'을 비롯,'수험생 십계명''태교 십계명''다이어트 십계명' 등 온갖 십계명이 다 있다.

자, 이제 질펀했던 송년회도 대충 끝나 간다. 차분히 지난 한해를 반성하고 내년을 설계할 때다. 이쯤에서 나만의 십계명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가훈이나 좌우명처럼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담배를 끊어라''술은 1주일에 두번만 마셔라' 등과 같은 구체적 목표를 정해 놓고 내년 한해 실천을 해보는 것이다. 근하신년(謹賀新年).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