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기수 정주영 재벌 1세대 시대 폐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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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재계의 거목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타계(3월 21일)는 한국경제사에 큰 획을 그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과 SK 최종현 회장에 이어 鄭 명예회장이 타계함으로써 재벌 1세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는 도전정신으로 조국 근대화를 이끌었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현대 정신'을 고취했다.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3년 동안 46개 회사를 설립했다. 현대토건사(현 현대건설)를 설립한 이후 자동차.중공업.전자.금융.석유화학.유통 등 전 산업분야를 일군 개척자였다. 그는 건설인으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 서산간척지 공사 등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정명예회장은 지치지 않는 정열로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68년 2월 착공해 2년5개월만이라는 세계 최단시간 완공이란 기록을 남겼다. 추풍령에 세워진 고속도로 기념비의 글은 그의 이같은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 재원과 우리나라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길'.

그는 특히 82년에는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는 폐유조선 물막이 공사로 서산간척지를 조성,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서산 땅은 3천1백22만평으로 여의도의 30배, 남한 전체면적의 0.1%에 이른다.

그는 기업인으로 북한을 처음 방문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세 차례 만나 대북경협의 물꼬를 텄다. 소떼몰이 방북과 금강산 관광사업은 실향민의 아픔을 달래줬고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정상회담의 밑거름이 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77~87년)과 서울 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대외 활동도 활발히 했다.

한편으로는 무리한 기업 확장 등 부정적 이미지도 남겼다. 그의 무리한 사업확장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경영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이 자금난을 겪은 끝에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계열분리로 둥지를 떠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 하이닉스반도체가 자금난으로 계열분리되는가하면, 현대증권 등도 해외에 매각될 처지다. 그가 마지막 숙원사업으로 추진한 대북사업인 현대아산도 자금난으로 중단될 위기다.

그는 정치에 입문해 큰 좌절을 겪기도 했다. 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1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실패했다.

정주영 비화집 『이봐 해봤어?』의 저자인 박정웅 시너렉스 사장은 "鄭명예회장은 한국경제사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건설.자동차.중공업 등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을 키운 공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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