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님들, 전용차 반납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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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전용차 반납, 교사 연수 프로그램 축소, 해외 부동산 매각, 비자 수수료 인상, 장기 실직자 고용 장려금 폐지 ….

영국 정부가 허리띠를 죄기 시작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예산 삭감에 돌입한 것이다. 조지 오즈번(사진) 재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데이비드 로스 예산담당 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올해 예산에서 62억4000만 파운드(약 11조3000억원)를 줄이는 긴축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전체 정부 예산의 1.6%에 해당하는 액수다.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집권한 보수당은 지난 6일 실시된 총선의 공약으로 즉각적인 재정 지출 축소를 내걸었다. 자유민주당은 경제 회복을 위해 내년부터 예산을 줄일 것을 주장하다 보수당의 정책에 동의해 줬다.

3월 말에 끝난 2009∼2010 회계연도 영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1561억 파운드로 국내총생산(GDP)의 11.6% 규모다. 누적 재정적자는 8934억 파운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초 영국에 적자 규모를 서둘러 줄일 것을 권고했다.

긴축 계획은 10개의 부처별 예산 삭감안 형식으로 발표됐다. 가장 많이 예산이 깎인 부처는 사업혁신기술부로 당초 예산에서 8억3600만 파운드가 줄었다. 비율 면에서는 5.7%가 삭감된 노동·연금부의 예산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비효율적 고용 훈련 프로그램을 없애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지방정부에 대한 보조금, 공공주택 마련 재원, 대학 지원금 등도 크게 줄었다.

장관들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운전사가 운전하는 관용차를 타지 못하게 됐고, 출장 때의 항공기 좌석도 1등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한 등급 강등됐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관저에서 국회의사당까지(5∼10분 거리) 걸어서 다니고 있다. 장관들은 이미 자진해 연봉을 5% 줄이기로 했다. 예산 삭감은 인건비를 줄이는 데 집중됐다. 학교에서는 학습 상담원 등의 보조 인력을, 정부 부처에서는 각종 자격증 발급 업무를 맡은 외부 기관의 인력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보수당은 노동당 집권 13년 동안 정부 주변에 ‘군더더기’ 인력이 많이 늘었다고 비판해 왔다.

영국 정부는 5년 내에 재정적자 문제를 완전히 해소한다는 계획에 따라 올해 하반기에 한 차례 더 긴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로스 장관은 회견에서 “더욱 강력한 후속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은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올해 공공분야에서 5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부의 재정에서 수입을 얻는 민간사업자들도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어 전체적으로는 10만 명가량의 고용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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