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전진구 BBS 포항지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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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포항시 죽도동 BBS경북연맹 포항지부 사무실. 허름한 건물 1층 사무실 벽에는 청소년 유해환경 지도와 각종 사업계획을 체크하는 상황판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장학사업.청소년교화사업.유해환경 감시판에는 해당 사업의 실적을 나타내는 빨간 스티커가 빼곡히 붙어져 있다.

경북연맹 포항지부의 전진구 (56.교사.영천 학생야영장 근무)지부장이 이 사무실의 주인이다. 18일 오후 회원들과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는 도중 전화가 걸려왔다. "선샘요. 접니더. 우리 석유 좀 써 주이소.""우리 사무실은 거래처가 있고 내 딴 곳을 알아봐주께."

제자인 손모(30)씨의 전화다. 손씨는 전지부장이 포항의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만난 제자다. 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사고를 치며 '문제'를 일으키다 1989년 9월 자신과 친구들을 괴롭히는 선배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손씨가 개과천선한 것은 바로 전지부장 때문이다.

복역 중이던 교도소로 편지를 보내고 면회를 가다 눈길에 미끄러져 한달간 입원까지 하는 그를 보고 손씨가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다. 손씨는 지금 주유소를 경영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가장으로 변신해 있다.

전지부장은 문제 청소년들의 '대부'로 통한다. 70년 중등 체육교사로 교직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학생들을 지도하는 학생과 업무를 맡으면서 문제 청소년들과 인연을 맺게됐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먹는 학생들이 다니는 곳을 따라다니거나 아예 '잠복근무'를 할 정도여서 학생들 사이에 '독종'으로 통했다. 그가 청소년 선도단체인 BBS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89년. 손씨의 사건을 계기로 "비행 청소년들을 구해보자"며 팔을 걷어부쳤다.

그래서 공부 잘하고 착실한 제자는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문제아들만 만나와서다. "검찰에서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이나 법원에서 소년심판규칙에 따라 나에게 맡겨지는 청소년이 한해 50여명이나 됩니다. 이들이 마음을 고쳐먹도록 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결국 모두 착한 아들.딸로 돌아갑니다." 교도소에 복역 중인 청소년을 찾아다니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청소년 유해환경 감시와 장학사업도 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아 몇년전부턴 아예 술.담배도 끊었다.

전지부장은 "자녀들로 하여금 사랑을 받을 줄만 알고 베풀 줄은 모르도록 키우는 부모들의 잘못된 자식 사랑이 비행 청소년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남을 도와주는 것이 몸에 배지않은 요즘 아이들에게 봉사활동을 강요하고 이를 점수로 매기는 것은 더더욱 의미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자가 구속되면 퇴학시켜려고만 했지 면회 가보라는 교장선생님은 없어요. 이런 것이 비행 청소년을 만들어내는 잘못된 풍토지요." 그들을 인격체로 대하면 얼마든지 사회의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전지부장은 "정부나 시 당국도 많은 예산을 들여 청소년들을 위한 행사를 열지만 비행 청소년을 올바른 길도 인도하는 일에는 인색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13일 BBS 포항지부 회원들과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비행 청소년 선도 인생 30년을 되돌아 보는 행사를 가졌다. "청소년들에게 '정정당당'과 '원칙'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른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문제 청소년을 만들어 냅니다." 전지부장은 어른들의 각성을 거듭 강조했다.

홍권삼 기자.사진=조문규 기자

*** 전진구 지부장은

▶1945년 경북 포항 출생

▶ 64년 포항고교 졸업

▶ 68년 한양대 체육과 졸업

▶ 70년 영일중 교사

▶ 85년 대구지검 경주.포항지청 청소년 상임선도위원

▶ 96년 수원대 행정학 석사,BBS경북연맹 포항지부장

▶현재 영천 학생야영장 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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