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성탄절 녹색평화의 기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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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 시대에 성탄절을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철없는 아이들과 백화점 주인들일 것이다.그러므로 백화점들이 세상사람들에게 반짝이는 불빛과 흥겨운 캐럴로 성탄의 기쁨(?)을 제일 먼저 나타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천사에게서 성탄의 소식을 전해받고, 마굿간에 태어난 아기 예수를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들은 밤에 들에서 양을 치던 보잘 것 없는 목동들이었다. 추운 겨울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는 냄새나는 구유에 뉘어 있었다. 화려한 현대의 성탄절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하루를 쉬며 즐겁게 지내는 현대의 성탄절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성탄절의 본질을 잊고, 소비를 조장하고 향락에 빠지는 현대의 모습은 정작 예수의 탄생일을 욕되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잘못된 현대의 성탄절의 풍조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신 예수를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현대 교회들의 일그러진 일상적인 행동양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했던 예수의 삶이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대 교회는 결국은 성탄절마저 변질시키고 말았다.

예수는 병자들의 병을 고치고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은 기득권자들의 아성인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성탄절에 예수가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예수는 자신을 희생한 평화의 왕이다.

예수의 탄생이 기쁨이 되는 것은 절망 가운데 있는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에게 희망을 주고, 죽음의 질곡에서 건져주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얼룩진 21세기 벽두, 이 시대에 예수가 다시 온다면 분명히 아프가니스탄의 포화 속에서 굶주리며 헐벗은 난민들에게 올 것이다. 그들에게 평화의 기쁜 소식으로 올 것이다.

이 시대의 교회는 무엇을 하는가? 교회는 평화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의 기쁨이 되고, 소망을 심어주는가□ 또 세상 사람들의 욕심을 녹여 없애고, 미움 대신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는가□ 2001년 째 맞이하는 성탄절은 그만큼 첫 성탄절에서 멀어지고 있다. 교회가 그러하고, 기독교인이 그러하고, 세상이 그러하다.

때묻지 않은 아기 예수를 맞이하자. 순수하고 죄없는 아기 예수가 지금의 혼탁해지고, 탐욕으로 가득찬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성탄절을 만들어야 한다.

안으로 문을 닫아 걸고 성탄절을 빌미로 끼리끼리 모여 희희낙락하며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참다운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 날만이라도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죽어가는 생명들에게 소망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공포 속에 있는 전쟁난민, 기댈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 허탈감에 빠진 농민들, 도시 뒷골목의 빈민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서 기쁨을 안겨줘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된 자연환경과 뭇생명체에도 녹색 평화의 기쁨을 안겨줘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가 마굿간에 난 것은 인간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뭇생명을 위해 오심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탄생은 특정한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아니 온 우주의 기쁨이 돼야 한다.

김영락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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