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진승현게이트' 한보사건과 닮은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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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른바 '진승현(陳承鉉)게이트'에 급기야 고위층 가족의 연루 의혹이 거론되면서 사건의 흐름이 1997년 한보 사건과 비슷한 모양새로 전개되고 있다.

급성장한 기업의 흥망에 소위 권력자들이 개입한 비리사건이란 점, 그리고 검찰이 1차 수사를 마무리한 뒤 재수사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진상이 밝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직 혐의가 확인되진 않았지만 정보기관 핵심간부, 청와대 수석 출신 공직자가 등장한다는 것도 두 사건을 닮은꼴로 연상시키는 요소다.

무엇보다 두 사건이 정권 말기의 권력형 비리사건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 재수사 부른 한보사건=97년 1월 한보그룹이 최종 부도가 나자 대검 중수부는 정태수(鄭泰守)총회장과 한보그룹의 수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그해 2월 청와대 총무수석 출신의 홍인길(洪仁吉.당시 신한국당)의원과 권노갑(權魯甲.당시 국민회의)의원 등 국회의원 4명, 김우석(金佑錫)당시 내무부 장관과 은행장 2명이 구속됐다.

당시 배후에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차남 김현철(金賢哲)씨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증폭됐지만 검찰은 이를 무혐의 처리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검찰은 같은해 3월 대검 중수부장을 심재륜(沈在淪.현 부산고검장)씨로 교체했다. 沈중수부장은 젊은 검사 5명으로 '드림팀'을 구성, 한보사건과 김현철씨 비리 의혹을 재수사했다.

결국 수사팀은 정권의 실세 중 한명이던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과 김현철씨를 구속했다. 혐의는 한보가 아닌 다른 기업으로부터 각종 이권과 관련해 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한보'로 시작된 사건의 성격도 '김현철 비리 사건'으로 바뀌었다.

◇ 주목되는 陳게이트 재수사=현 정부 출범 후 비리의혹 사건에서 한보 같은 재벌의 위치를 대신한 것은 벤처기업과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들.

벤처 열풍과 주식시장 활황으로 금융계의 큰손으로 등장한 陳씨는 주가 조작과 불법대출 사건으로 지난해 12월 구속됐다.

당시 陳씨의 1백억원대 비자금조성설과 정.관계 로비의혹이 있었지만 수사를 맡았던 서울지검 특수1부는 "정.관계 로비는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지난해 수사팀이 陳씨의 로비스트인 김재환(金在桓)MCI코리아 회장에게 "국가정보원 정성홍(丁聖弘)경제과장에게 4천만원을 빌려주고, 민주당 김방림(金芳林)의원에게 5천만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난달 15일 재수사가 시작됐다.

현 서울지검 특수1부는 陳씨로부터 1억4천6백만원을 받은 丁전과장과 "신광옥(辛光玉)전 차관(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전달하겠다"며 1억여원을 받아간 민주당 당료 출신 최택곤(崔澤坤)씨를 잇따라 구속했다.

또 辛전차관과 陳씨 비호의 핵심인물인 김은성(金銀星)전 국정원 2차장의 소환을 앞두고 있다.

이어 최근 崔씨와 같은 대학의 ROTC 출신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씨의 관련설이 제기됐고, 金씨측은 17일 崔씨가 구명을 요청하기 위해 접근해온 사실을 공개했다.

◇ 용어도 닮은꼴=돈 전달을 골프가방 등을 이용해 현금으로 했다는 점, 상당액의 배달사고가 있었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한보사건 당시 홍인길 의원의 '깃털론(자신은 깃털이고 몸통은 따로 있다는 주장)'을 말한 것과 유사한 일도 이번 사건에서 벌어진다.

검찰은 최근 수사가 채 진행되지도 않은 인물들이 알 수 없는 출처로부터 사건 관련인물로 회자되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나뿐 아니라 다른 거물도 개입했다"는 폭로를 통해 자신에게 집중되는 지탄과 혐의를 분산시켜보려는 의도로 보고 '수사방해'로 규정하고 나섰다.

김원배.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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