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캠퍼스의 성폭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대가 사상 처음으로 '성폭력 가해자'인 휴학생에게 재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제명처분을 내렸다.대학 부설기관으로 올해 초 설립된 성희롱.성폭력상담소에 동일인에 대한 신고가 8건이나 되는데다,피해자끼리도 서로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상습범'으로 인정하게 한 배경이라고 한다.

한 대학생의 제적은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캠퍼스 성희롱.성폭력 문화가 만연돼 있음을 상기할 때 대학측의 일벌백계식 엄중 경고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본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대학 내 성폭력 상담만 하더라도 3년 전(1997년 1월~98년 6월) 75건에서 2000년 1월부터 2001년 6월까지 1백12건으로 증가해 대학 캠퍼스 내 성폭력이 단순히 극소수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지성인들의 전당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학에 성희롱.성폭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남성 주도의 문화에 순종해 참고 지내오던 여학생들이 이제는 입을 열어 말하고 있을 뿐이다. 각 대학의 총여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학칙 개정운동과 성폭력 상담소 설치에 힘입어 여학생들이 교수-제자,선배-후배라는 기존의 위계질서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여학생들은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개인적 수치'로 감추지 않고 '바로잡아야 할 폐악'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남성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런 불행한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각 대학은 캠퍼스의 구성원인 남성들, 특히 교수.선배.강사 등 상대적으로 높은 직위에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의식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 남성 주도의 성문화를 바꾸어가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