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리스트' 의혹보다 몸통 수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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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진승현 게이트'가 끝 모르게 번지고 있다. 신광옥(辛光玉) 전 법무부 차관 뇌물수수 의혹이 불거진 후 진승현 리스트.정치권 로비의혹에다 정치인 돈 봉투 살포설까지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의혹이 한 가지씩 나타나는 형국이니 '의혹 공화국'이고 '리스트 공화국''부패 공화국'임을 절감하게 한다.

특히 진승현 리스트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다. 그러나 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설(說)만 무성한 것은 사건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 특히 야당은 마치 리스트를 확보한 듯이 흘려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야당은 리스트 의혹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입수된 리스트가 실제로 있다면 즉시 공개해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陳리스트'니 '金리스트'하며 의혹만 증폭시킨다면 검찰 수사 자체가 헷갈릴 수도 있고 진실 자체보다 명단에만 관심을 갖는 스캔들 캐기로 수사가 변질될 수 있다. 검찰은 이 점 깊이 유의해 사건의 몸통 수사에 진력해야 한다.

진승현 게이트는 배후 비호 세력이나 로비 대상자가 모두 청와대.국가정보원.집권 여당 간부 등 권력 실세에 집중돼 있어 권력형 비리 사건의 전형이다. 陳씨가 구속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사건의 몸통은 밝혀지지 않은 채 계속 의혹.설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라도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오직 실체적 진실 규명에만 매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辛전차관의 금품수수 의혹 수사가 출발점이다.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의 뇌물 수수 여부는 바로 정권 도덕성의 잣대라는 점에서 숨김없이 밝혀져야 한다. 특히 辛씨가 청와대 사직동팀을 지휘해 陳씨를 조사.보고토록 한 후 금품을 받고 수사상황 파악,변호사 소개 등 구명운동에 나섰다면 전반적인 청와대 업무처리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정치권 로비도 의문투성이다. 드러난 금품 살포.로비 대상자들을 몸통으로 보기는 힘들다. 陳씨가 민주당 원외위원장인 허인회씨에게 5천만원을 줬다면 다른 실세 정치인들에게도 주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민주당 金모 의원에게도 5천만원이 전달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또 기업이 한창 어려운 시기에 중소 벤처업체가 5천만원씩 뿌린 것을 순수한 정치 후원금으로 볼 수만은 없다. 이밖에 국정원 간부들의 집단 개입 의혹도 낱낱이 밝히고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진승현 게이트는 불과 며칠간의 재수사에서 비리 덩어리로 밝혀졌다. 결국 검찰이 당시 진승현 게이트를 축소.은폐한 결과일 것이다. 수사팀의 무능인가,아니면 외부 압력 때문인가를 밝혀내 책임을 묻는 일도 검찰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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