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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세계 1위 신지애 선수 아버지의 교육법

중앙일보

입력

KLPGA 최초 3년 연속 다승왕·상금왕·최저타수상·대상, 2009년 LPGA 신인상·상금왕·다승왕. 그리고 2010년 세계 랭킹 1위. 골프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신지애(22·미래에셋)선수가 걸어온 길이다.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한 순간도 여유로웠던 적은 없다. ‘강철같은 정신력’으로 ‘파이널 퀸’이란 별명을 얻은 그에게 뚝심과 고된 훈련만이 친구였을지 모른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고 항상 곁을 지켰던 사람은 아버지 신제법(50)씨였다.

어머니의 죽음, 슬픔을 딛고 일어서다
“어머니는 200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저희 어머니를 위한 날입니다. 엄마, 너무 사랑하고 그립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항상 저와 함께 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21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톤의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LPGA 시상식.

딸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신씨는 연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6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신 선수가 15살 때의 일이다. 그 시련을 극복하고 정상에 우뚝 선 딸이 대견한 순간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신 선수에게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였다. 신씨가 딸의 재능을 발견하고 골프 선수로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지원이 있어서였다. 그런 어머니의 죽음은 가족에게 정신적·경제적으로 큰 고난이었다. 신씨는 당시 월급 85만원을 받고 개척교회 목사로 일했다. 그는 12만원 짜리 월세로 집을 옮긴 뒤 전 재산인 1900만원을 딸 앞에 내놨다. 목회직도 사임하고 신 선수의 골프 인생에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걸었다.

“이 돈은 엄마의 생명과 바꾼 돈이다. 1700만원으로 너 1년 골프 시키고, 200만원으로 붕어빵 장사라도 하겠다.” 신 선수의 대답은 “네” 한 마디였다. 그리고 다음 해 생애 첫 전국 우승을 했다. 신씨는 그 때 딸의 심정을 훗날에야 들을 수 있었다. “지애가 그러더라고요. 그 전 까진 ‘에이, 다음에 잘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었는데 그 이후론 ‘한 타 한 타가 마지막’이란 생각을 했다고.”

괴물 같은 장타력, 아버지와 함께 만들다
그러나 신 선수의 강인한 정신력의 원천은 이런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11살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부터 언제나 옆을 지켰던 아버지가 큰 힘이 돼줬다. 신씨는 신 선수가 첫 전국 우승을 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상비군 선발을 위해 선발 포인트를 많이 주는 대회를 주로 나갔지만 신씨의 판단은 달랐다. 일부러 경쟁상대가 없는 전국 대회를 골랐다. “준우승도 여러 차례했지만 우승 경험이 없었어요. 한 단계 도약 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죠.” 결과는 연이은 전국 우승. 어머니의 사고 이후 달라진 신선수의 정신력에 신씨의 지혜가 결합해 좋은 결과를 낸 것이다.

신씨의 딸에 대한 훈련은 지독하리만치 엄격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자세교정을 위한 훈련도구를 직접 제작하는 것은 늘 신씨의 몫이었다. 전남 영광군 홍농읍 집에서 광주 골프 연습장까지 왕복 3시간의 거리를 일요일을 빼고 매일 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달리는 차 안에선 악력기로 양손 200번, 아령 운동 200번을 매일 반복했다. 날마다 20층 아파트 계단을 7번씩 오르내렸다. 그 후엔 운동장을 10바퀴 돌았다.

훈련은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골프를 시작한 후 5년간 길고 지루한 기초체력 훈련이 이어졌다. 골프 기술을 연습 할 땐 부족한 부분이 보일 때마다 완벽하게 고쳐질 때까지 연습했다. 신 선수는 어프로치샷(그린까지 100야드 이내 거리에서 핀을 향해 치는 샷)을 위해 1년 동안 수만 번의 샷 연습을 묵묵히 해냈다.

장점 살리기 주력…10년후를 바라봐야
골프는 흔히 ‘정신력의 스포츠’라 불릴 만큼 순간의 집중력이 경기 결과를 좌우한다. 그래서 신씨는 무엇보다도 ‘강인한 정신력’을 중요하게 꼽았다. 골프 경기를 보면 겉으로 보기엔 조용해 보이지만 그 안엔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는 것이다. 심하다 싶을 정도의 고된 훈련도 어린 시절 순한 성격의 딸에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러주기 위해서였다.

신씨는 딸보다 더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실제 경기를 뛰는 아이는 나보다 훨씬 많은것들을 감각과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심탄회한 대화상대가 돼 멘토가 되려면 믿음을 줄 수 있는 확실한 전문가가 돼야 해요.” 이론과 실전에 기반한 칭찬은 자신감을 길러주고, 냉철한 비판은 훌륭한 채찍이 된다는 것이 신씨의 지론이다. 신문·잡지·스포츠 이론·선배 골퍼의 조언 등 골프와 관련된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 공부했다. 딸의 훈련일지를 만들고 매일 내용을 기록하며 문제점을 찾고 그에 맞는 새로운 훈련 계획을 세웠다.

자녀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눈이 생기면 아이의 실력에 대한 믿음도 자연스레 나온다. 신씨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실력을 못 믿더워하는 말을 무의식 중에 흘려버린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이것만 잘 하면 될 텐데’라던가 ‘우리 아인 꼭 저기서 실수를 해요’라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은 단점을 부각시켜 자신감 있는 경기 운영을 방해하게 된다. 단점을 부각하기 보단 장점을 살려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부터 아이의 실력과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10년을 바라보고 교육을 할 수 있어요. 순간 순간 흔들리는 부모의 모습에서 아이가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진설명]신씨는 “아이가 집중하는 분야에서 부모가 전문가가 되면 자연스레 대화가 트인다”며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을 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조언했다.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 사진 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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