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험수위 가계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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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계 빚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 전체의 빚은 3백16조3천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5.9% 늘어났으며, 가구당 빚(2천2백만원) 역시 1년새 같은 비율로 증가했다.

특히 신용카드 보급과 사용이 급증하면서 신용카드 관련대출이 대부분인 판매신용액은 33조1천억원으로 훨씬 높은 증가율(37.4%)을 보이고 있다.

금융권별로 보면 은행들의 가계대출 증가가 두드러진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1백37조원으로 1년 전에 비해 40.1%나 늘어났다.

가계 빚은 소비나 주택구입.생업자금 등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수출과 기업의 설비투자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가 외롭게 경기를 떠받치고 있는 실정이어서 가계 빚 증가를 무조건 나무라기도 어렵다.

금융기관들 역시 투자부진이나 증시침체를 이유로 가계대출 위주의 소매금융에 치중해온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가계의 소득 증가속도를 훨씬 앞질러 빚이 늘다 보니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9월 말 현재 은행권의 신용카드 연체율(3개월 이상)은 3.25%로 가계대출 평균 연체율(1.67%)을 두배 가량 웃돌고 있다.

이같은 가계 빚 증가는 결국 개인부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외환위기 직후 개인부도 사태로 소비가 얼어붙고, 집값이 폭락했으며, 부실화한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올 들어 빚부담을 못이겨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한 건수가 10월 말 현재 2백41건으로 사상 최고였던 1999년 수준(2백63건)에 육박하고 있다는 불길한 통계도 제시되고 있다.

카드 빚을 비롯한 가계 부채를 가계 스스로 소득에 맞춰 조절하는 노력과 함께 금융기관들의 가계대출 선별기능 강화가 강조돼야 할 시점이다.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회복시켜 돈의 물꼬를 돌리는 근본적인 대책 역시 병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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