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중국 쪽에 SO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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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유럽발 재정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대응이 속도를 내고 있다. 위기의 발원지인 그리스는 중국에 구조 요청을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에 이어 중국까지 무대의 중앙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23일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가 중국 최대 해운업체 코스코의 웨이자푸(魏家福) 사장을 만나 물류센터 투자를 요청했다. 그리스는 위기 타개책의 일환으로 아테네 인근에 2억 유로(약 3000억원)를 들여 물류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코스코는 아테네 피레우스 항만의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웨이 사장은 물류센터 투자에 대해 즉답을 내놓진 않았다. 그러나 터미널 운영에 대해 “(그리스 현지인 고용을 위해) 중국인 근로자는 한 명도 데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를 도울 뜻이 있다는 의미다. 그리스에선 코스코가 물류센터와 별도로 항만시설 개선을 위해 연내 5억5000만 유로 규모의 투자를 시작할 것이란 기대 섞인 예상도 나왔다. 이 회사는 중국 정부가 경영권을 쥔 공기업이다.

벨기에를 방문 중인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무부장은 “유럽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관찰자에 그치지 않고 국제통화기금(IMF) 회원국이자 유럽의 핵심 교역국으로서 구제금융 및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로화 가치 하락을 막는 문제에서도 중국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미국과 유로존이 유로화 안정을 위해 공동성명 발표와 같은 공조 개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어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액(2조5000억 달러)을 지닌 중국이 유로화 방어를 위한 최후의 카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 내 자구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재정적자 회원국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상임의장은 21일(현지시간) 위기관리·재정안정 태스크포스(TF) 회의를 한 뒤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를 만들 것”이라며 “비재무적인 조치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재무적 조치로는 유로존 내 주요 결정에서 재정적자 국가에는 의결권을 주지 않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유로존 국가는 안정성장협약(SGP)에 따라 개별 국가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지키는 나라가 별로 없었다. 위반에 따른 벌금(GDP의 0.5%)도 유명무실했다. 얀 포치아테크 슬로바키아 재무장관은 “규칙을 지키지 않은 국가는 유로존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유럽 지원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센 독일에서는 의회가 7500억 유로 규모의 유럽 안정기금을 승인했다. 이 소식은 21일 다우지수가 막판 반등하는 계기가 됐다. 포르투갈 의회는 공산당이 제출한 정부 불신임안을 부결시켰다. 정치적 불안이 위기 해결에 좋을 게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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