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광옥 법무차관의 진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신광옥(辛光玉) 법무부 차관이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재직 때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민감한 사안인데다 워낙 당사자가 완강하게 부인하는 바람에 중앙일보가 11일 아침 단독 보도한 직후에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분위기도 있었으나 "진승현씨가 辛차관과 만났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이 확인되면서 의혹이 점점 사실에 접근되고 있는 정황이다.

아직껏 辛차관은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지만 그의 주장도 처음보다 많이 후퇴했다. 진승현씨와 일면식도 없다고 했다가 "만난 기억이 없다"고 말을 바꾼 것이 한 예다. 그러면서 그는 陳씨의 로비를 맡았던 최택곤씨와는 서너차례 만나 식사를 함께 했다고 시인했다.

검찰은 "확인이 안됐다고 했을 뿐 돈 받은 적이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고 발을 빼는 모습이고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던 법무부도 공식 입장이 아니었다고 뒤늦게 말을 바꿨다. 여기에 崔씨가 검찰에 자진 출두했으니 이 모든 게 곧 밝혀지게 돼 있다.

이제 辛차관의 뇌물수수 의혹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게 됐다. 국가 사정작업을 총괄 지휘해온 대통령 최측근 참모가 금융사기 사건의 뇌물수수 혐의 대상이 된 만큼 정권의 도덕성을 걸고 숨김없이 파헤치는 방법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 셈이다. 특히 의혹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어 수사를 급하게 서둘러야 할 상황이다.

수사 진행상 소환 조사가 불가피한 시점에 이르렀는데도 辛차관이 계속 법무부 차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검찰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상급자를 수사하는 것이 말처럼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먼저 辛차관이 자진사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사정 최고 책임을 맡았던 공직자가 뇌물수수 의혹 대상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불명예이고 진퇴를 결정해야 할 일이다. 또 상급자로서 현직 법무부 차관이 후배.부하 검사에게 불려가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모양새도 말이 아니거니와 공직기강이나 조직 전체를 위해서도 못할 짓이다.

임면권자가 해임 절차를 밟는 것도 방법이다. 아직 금품수수가 확인되지 않았으니 기다려봐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이상론에 불과하다. 辛차관이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던 중 정치 브로커로 알려진 최택곤씨와 여러 차례 만난 사실만으로도 의심받기 충분하고 처신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또 陳씨가 이미 辛차관을 두 차례 만났다고 주장한데다 청와대 사직동팀이 사전에 陳씨를 조사해 辛차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곳곳에 의혹 투성이란 점에서 문책사유도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의혹 대상자를 고위 공직에 그냥 앉혀두고 버티는 것은 정부의 수사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수사 방해라는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辛차관 경질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구호로만 철저한 수사를 외칠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수사 여건부터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