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 미국,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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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역전의 용사들이 21년 만에 다시 뭉친다.

1980년 미국 레이크플레시드 겨울올림픽 아이스하키에서 최강이었던 소련을 꺾고 금메달을 따낸 당시 미국 대표팀이 내년 2월 2일(한국시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올드스타팀과 친선경기를 갖는다.

이들은 "매년 기념행사를 가져왔지만 다시 한팀으로 뛰어본 적이 없었다"며 '금빛 추억'을 되씹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배도 나오고 머리도 희끗해진 이들에게서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날의 감동은 조금도 퇴색하지 않고 또렷이 남아 있다. 그들이 빙판으로 돌아온 이유는 9.11 뉴욕 테러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뒤숭숭한 미국에 기적에 대한 희망을 다시 안겨주기 위해서다.

80년은 미국에는 최악의 해였다. 79년 겨울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냉전은 극에 달했고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침체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이란에서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인질로 붙잡혀 미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미국인은 어느 때보다도 희망을 갈구했고 미국 아이스하키대표팀은 '빙판 위의 기적'으로 화답했다. 대학 루키들과 마이너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팀은 겨울올림픽 8회 우승의 세계 최강 소련팀과 준결승에서 만났다. 야구로 치면 고등학교팀이 뉴욕 양키스와 맞붙는 격이었다.

80년 2월 23일 준결승전. 호랑이 감독 허브 브룩스는 "너희들은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났다. 이 순간은 너희들 것이다. 마음껏 즐겨라"며 평균나이 22세의 겁없는 미국팀을 한껏 격려했다.

어느 누구도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빙판 위에 기적을 새겨넣었다. 종료 10분을 남겨둔 3-3 접전에서 주장 마이크 에루지오네가 골대 10m 앞에서 날린 퍽이 소련 네트를 갈랐다. 당시 중계를 하던 ABC 캐스터 앨 마이클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당신들은 기적을 믿습니까"라고 물었고 이후 이날의 승리는 '빙판 위의 기적(miracle on ice)'으로 불리게 됐다.

미국 전역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고, 아직도 20세기 미국 스포츠 사상 10대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미국팀은 이틀 뒤 핀란드와의 결승전에서도 마지막 3피리어드 1-2에서 세골을 연달아 넣어 결국 금메달을 차지했다.

주전 골리였던 짐 크레이그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해냈다. 시상식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가슴 한 구석에서 울컥한 것이 치밀어 올랐다"고 회고하며 "우리 모두에게 소중했던 것은 금메달이 아니라 기적을 믿게 됐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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