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관용차가 버젓이 택시영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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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얼빈 공항의 택시승차장 앞. 스포츠형 머리에 검은 점퍼를 입은 건장한 젊은이가 승용차를 세워놓고 "시내까지 1백위안"이라며 호객한다. 택시값 1백20위안보다 싸다고 이 차에 덥석 올라타면 평소에는 도저히 못들어갈 민간인 통제구역의 지름길을 달려볼 수 있다.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관용차이므로 당연하다. 그것도 힘센 기관의 차라는 것은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리는데도 오히려 경례를 부쳐올리는 교통경찰을 보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사는 도중에 차를 세우고 '친절하게도' 빈 택시를 잡아준다. 바꿔타라는 것이다. 택시기사로부터 50위안을 빼앗듯 잡아채고는 "저 사람을 시내까지 태워주고 1백위안 받으라"고 한다. 관용차에서 택시로, 택시에서 관용차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중국의 '손오공 관용차'다.

선양으로 가자며 단둥에서 탄 택시의 기사는 단둥 시내를 빙빙 돌며 연신 휴대전화를 걸어댄다. 급한 약속이라도 한 듯 거리의 한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빨리 가자"고 해도 웃으며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후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종이꾸러미와 주소.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그리고 지폐를 꺼내 기사에게 준다. 택시는 그리고 나서야 출발한다. 선양에 도착해서는 종이에 적힌 주소지에 먼저 들러 꾸러미를 건네준 뒤 목적지로 간 것은 물론이다. 승객은 화물과 합승한 셈이다.

이런 일을 한두번 겪으면 '중국 근로자 월급이 얼마인데 어떻게 값비싼 외제상품이 팔릴까'라는 의문이 해소된다. 주요 대도시에서는 통계상의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구조가 돼버렸다. 현실과 통계의 사이는 늘 부수입이 메워준다.

선진국 기준으로는 부패나 지하경제지만 중국에선 일상생활 깊숙이 뿌리 박은 관행이다. 더구나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범죄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최근 중국 근무를 마치고 귀임한 한 일본 기업인은 "요즘 중국에선 자기 것을 먼저 챙기는 습성이 만연돼 있다"며 이것이 경제의 전반적인 효율성에는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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