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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혁명→생활 혁명, 쉬운 법률 용어로 백성을 구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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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32면

성공한 국왕들 세종⑨ 훈민정음 창제정신

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표면적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하나는 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온 천하에 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1년 전인 세종 27년(1445) 4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먼저 만들게 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조선 건국을 ‘용이 하늘을 난 결과’로 묘사한 것이다. 용비어천가는 먼저 정음(正音:한글)으로 지은 다음 한시(漢詩)로 번역하는 순서로 편찬되었다.

세종은 이미 재위 1년(1419) 대마도 수호(守護:대마도 도주)에게 준 글에서 “우리 태조 강헌대왕이 용비(龍飛)하셨다”라는 표현을 써서 오래전부터 조선 건국을 용비(龍飛)의 결과로 보고 있음을 드러냈는데, 이것이 용비어천가로 나타난 것이었다. 용비어천가태조실록을 근거로 한 첨삭 과정을 거쳐 만들었다.

세종실록 28년(1446) 11월 기록에는 “태조실록을 내전(內殿)에 들여오라고 명하고, 드디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해서 사적(事迹)을 상고해 용비시(龍飛詩:용비어천가)에 첨입(添入)하게 했다”고 적혀 있다. 세종 29년(1447) 10월 완성된 용비어천가 550본은 군신들에게 하사됐다. 제1장이 “해동 육룡(六龍)이 ⑧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성(古聖)이 동부(同符)시니”라는 노래였다. 해동 육룡이란 이성계의 4대 조상(목조·익조·도조·환조)과 태조·태종을 뜻하는 것인데 이들의 건국 행적이 천명을 받은 옛 성인[古聖]들과 같다는 의미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직접 지은 어제(御製)에서 밝힌 그대로다. 즉 ‘어린 百백姓셩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어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 날마다 편안하게 하려고 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세종은 백성이 문맹일 경우 가장 큰 문제가 옥사(獄事)라고 생각했다. 문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 7명이 세종 26년(1444) 2월 언문 제작을 반대한 상소 중에 바로 이 대목이 있었다.

“(언문 제작과 관련해) ‘형살(刑殺)에 대한 옥사(獄辭)를 이두문(吏讀文)으로 쓴다면 문리(文理)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 차이로 혹 원통함을 당할 수도 있다. 지금 언문으로 그 말을 직접 쓰고 읽어서 듣게 한다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다 쉽게 알아들어서 억울함을 품을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세종실록 26년 2월 20일)

최만리 등은 이두를 아는 자도 매를 견디지 못해 그릇 항복하는 자가 많으니 피의자가 글자를 안다고 옥사가 공정하게 처리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각종 소송 문서를 읽을 줄 안다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적어질 것이란 점에서 최만리 등의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당시 법률문서는 한문과 이두가 섞여 있었는데 이두 또한 한문 못지않게 어려웠다.

예를 들어 의금부의 수사 기록인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등에 “同月 罪人 ○○○ 年三十七 白等矣身其時不入直家…”란 구절이 있다고 치자. 이 중 백등(白等)은 ‘사실을 진술하건대’란 뜻이고, 의신(矣身)은 ‘저는’이란 뜻이다. 번역하면 “같은 달 죄인 ○○○은 진술하기를 저는 그때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라는 뜻이 된다. 백등(白等), 의신(矣身) 등의 이두문을 모르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법률문서를 훈민정음으로 작성해 모든 백성이 알게 하려는 것이 세종의 뜻이었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깊은 철학적 바탕 위에서 나왔다. 일제가 조선어 말살정책의 시동을 걸던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세종 28년 발간)의 「제자해(制字解)」는 세종이 어떤 철학적 바탕 위에서 훈민정음을 창제했는지 잘 드러나 있다.

“하늘과 땅의 도는 ‘한 음양과 오행(一陰陽五行)’일 따름이니, 곤(坤)과 복(復) 사이가 태극(太極)이 되고, 움직임과 고요함의 뒤가 음양이 된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삶을 누리는 무리들이 음양을 버리고 어찌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소리가 다 음양의 이치가 있지만 돌아보건대 사람들이 살피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정음을 만드는데 처음부터 지식으로 꾀하고 힘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소리를 따라 그 이치를 다할 따름이니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거늘 어찌 하늘과 땅과 귀신과 더불어 그 씀(用)을 구하지 않겠는가. 정음 28자는 각자 그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 (훈민정음「해례본」)

훈민정음에서 하늘을 ‘ㆍ’로, 땅을 ‘ㅡ’로, 사람을 ‘l’로 표현한 것은 음양과 태극 이론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그 형상을 본떠서 목구멍을 ‘o’으로, 이(齒)를 ‘ㅅ’으로, 입을 ‘ㅁ’으로 형상화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데는 혼란스러운 한자음을 정리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이를 위해 세종은 인간의 구강(口腔)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언어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전 세계 어느 언어도 갖지 못한 훈민정음만의 특출한 장점이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으로 돌아가면 지구상의 모든 언어를 완벽하게 적을 수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이런 장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크게 퇴보했다. 일제는 1912년에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을 만들었는데 이때 아래아(ㆍ)를 폐지하고 받침에서도 한 글자 받침 ‘ㄱ, ㄴ, ㄹ, ㅁ, ㅂ, ㅅ, ㅇ’과 두 글자 받침 ‘ㄺ, ㄻ, ㄼ’의 열 가지만 인정했으며, 설음 자모 ‘ㄷ, ㅌ’ 등과 ‘ㅑ, ㅕ, ㅛ, ㅠ’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는 등 훈민정음의 발음체계를 크게 제한했다. 1930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직접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을 만들었고, 이때도 표현 가능한 발음을 상당 부분 제한했다. 문제는 광복 후에도 이런 식민지 언어정책이 철저하게 극복되지 않은 결과 현행 한글은 특정 발음을 표기할 수 없는 절름발이 언어로 전락했다. ‘ㄹ·ㄴ’이 어두(語頭)에 오면 ‘o’으로 발음하게 한 두음법칙(頭音法則) 같은 것들은 수많은 일제 잔재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현재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은 영어의 B와 V, P와 F, R과 L 등을 구분해 표기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훈민정음 창제 원칙으로 돌아가면 해결될 수 있다. 한글연구회의 최성철 회장 같은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연서(連書)와 병서(竝書) 원칙을 사용하면 해결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B와 V, P와 F는 모두 순음(脣音:입술소리)인데, 훈민정음「해례본」은 “ㅇ를 순음(脣音:입술소리) 아래 연서(連書)하면 곧 순경음(脣輕音:입술 가벼운 소리)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많은 언어학자의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순음 ‘ㅁ·ㅂ·ㅍ·ㅃ’ 아래에 ‘ㅇ’을 더하여 만든 ‘ㅱ·ㅸ·ㆄ·ㅹ’ 등이 순경음인데 이 중 B를 ‘ㅂ’로, V는 ‘ㅸ’으로 적고, P는 ‘ㅍ’로, F는 ‘ㆄ’으로 적는 식으로 정리하면 현행 한글맞춤법 통일안으로 적을 수 없는 발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장래에 국어학자는 물론 외국어 전문가, 역사학·언어학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종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 주제다.

훈민정음「해례본」에는 첫소리 두 자, 혹은 세 자를 합쳐서 사용하는 병서(竝書)에 관한 규정이 있는데, 이를 활용해 L은 ‘ㄹ’로 적고 R은 ‘ㄹㄹ’, 또는 ‘ㅇㄹ’ 등으로 적으면 이 역시 해결될 수 있다. 인간의 구강에서 나오는 모든 발음을 적을 수 있게 만든 훈민정음 창제 정신으로 돌아가면 우리 민족이 그토록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도 영어를 못하는 민족에 드는 현실을 타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세종은 동아시아의 보편 문자인 한자와 훈민정음의 공존을 추구했다. 용비어천가는 물론 세종 자신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등에서 세종은 훈민정음과 한자를 함께 사용했다. 이는 우리 민족이 하나의 문장 안에서 표의문자인 한자와 표음문자인 한글을 상호충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으로 돌아가 일제의 잔영을 걷어내고 우리의 언어정책을 세계화 추세에 발맞춰 크게 개혁할 때다. 그것이 세종의 애민 정신을 현재에 되살리는 길이다.